↑↑ 2008년 포항의장실을 방문해 친필서한을 써주는 故 박태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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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장성동에서 산지 참 오래됐죠. 선조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왔으니...장성동 떡고개를 지게지고 참 많이도 넘어 다녔죠. 그때는 길도 없었는데...”“제 나이가 68살이니 35년 정도 됐을 거예요. 故박태준 회장님과의 인연이... 우연히 알게 된 인연이 그렇게 오래 이어질지는 몰랐죠..”영원한 포항 장량人 최영만 前 포항시의장.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그에게서 먼저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느껴졌다.최 전 의장은 포항에서 나고 자란 본토박이 포항인(人)으로 내리 4선 시의원을 역임한 포항의 대표적 원로이다. 특히, 2008년에는 제5대 포항시의회 후반기 의장에 당선돼 포항을 재도약 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이런 그에게 정신적 지주가 있다. 바로 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그 주인공.그와 故 박태준 포스코회장의 인연은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땐 제가 포항의 철강회사에 총무담당직원으로 근무할 때였어요. 포항제철소에서 만난 박회장님이 다짜고짜 내가 누구이고 어디 사느냐고 물으셨죠. 전 수금하러 포철에 왔고 포항에 산다고 했어요. 그러니 그놈 잘 생겼네 하시더라고요. 그게 첫 인연이 됐죠”이후 박 회장은 포항에 오면 그를 찾았고 그 인연으로 포항향토청년회를 방문하는 등 친분을 이어갔다. “하루는 박 회장님께서 묻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부탁도 많이 하는데 넌 왜 안하냐고. 그러면서 ‘너 꽤 괜찮은 놈이야’라고 칭찬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영만아, 네가 향청 회장이니 정직하고 올바른 포항인이 되라고 격려해주셨어요”“2008년 포항시의장에 당선됐을 무렵 박회장님이 포항에 내려오셔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의장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남기셨어요”『우리 친구 최영만 의장과 의원 여러분, 포항은 영원·세계일류 철강도시로서의 자존과 긍지를 가집시다. 영원한 포항인 박태준 2008년 10월 14일』“처음에는 A4지를 가져오라고 하시 길래 왜 그러시나 했어요. 그리고는 즉석에는 이런 글을 적어주셨습니다”최의장이 故박태준 회장이야기를 꺼낸 것은 두 사람 모두 포항을 너무나 사랑하고 걱정하는 포항인(浦項人)이라서다.한 때 포스코는 지방세만 1,000억 원 이상을 내는 초우량기업이었지만 중국 등의 영향으로 철강경기가 쇠퇴지면서 지역경기까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최 의장은 자신의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mentor)였던 故박태준 회장이 자꾸 떠오른다고 한다.“전 지금 몸이 그렇게 좋지 않지만 포항을 위해 각종활동을 하고 있어요. 포항시의원 때도 의장 재임시절에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제 고향 포항이 발전하길 바랬으니깐요”“의장재임시절 무엇보다 포항시와 포항시의회간의 협력을 강조했죠. 그래서 적지 않은 성과도 이뤄냈던 것 같아요. 또한, 스틸러스 단장을 하면서도 포항 알리기에 발벗고 나섰죠. 그래서 지금도 허정무, 최순호, 황선홍, 홍명보 등 최고의 선수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어요”“타계하신지 5년이 지났지만 박 회장님이 살아계신다 해도 저랑 비슷할 겁니다. 어떻게 하면 포항을 다시 발전시킬 수 있는지 포항을 살릴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하셨을 거예요”그는 말한다.“포항이 예전처럼 다시 활기 있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시민과 행정기관, 언론들 모두 협력해서 포항을 살릴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박태준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 간의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입니다.“박태준 회장이 포항을 사랑했듯이 자신이 사는 포항을 사랑하는 주인의식도 있어야 하겠죠”그의 말처럼 포항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지역을 사랑했던 ‘박태준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경상매일신문=최성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