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사람이 사는 집은 높이로가 아닌, 옆으로 지어갔다. 옆으로만 나가면서 집을 지었기에 방문을 열고 대청마루에 섰다하면, 눈앞이 탁 터 인다. 계절의 오고감도 피부로 바로 느낀다. 봄에는 앞마당에 핀 매화와 버들이 누가 먼저 봄맞이를 먼저 하는가를 두고 다툰다. 이를 매유쟁춘(梅柳爭春)이라고 한다.
이 다툼에서, 하루가 다르게 봄이 옴을 알려준다. 여름철은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땀을 닦아준다. 가을을 맞으면, 낙엽이 삶이나 생명의 무상(無常)함도 일깨워준다. 권력도 부(富)도 무상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겨울철마다 소복하게 눈이라도 내린다면, 중국의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문학비평가 김성탄(金聖嘆 1610?~1661)은 방문을 굳게 닫고 금서(禁書)를 읽는 재미가 인생의 10가지 재미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 따위 금서가 없어 인생의 재미중에 하나가 없어졌다고 해야겠다.
또한 남의 집과 경계선이라고 해도 까치발만하면, 담장 너머 마주 보며 서로가 대화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별난 음식이라도 장만하면,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 먹었다. 담장에 경계가 아니고 대화와 인정 그리고 소통의 상징이었다. 담장 높이도 사람고개 정도로써, 기껏 흙을 쌓아 그 위에 기와 몇 조각을 얹었을 뿐이다. 이 기와로 인해 경계 짓기가 아니고, 정취(情趣)의 나눔이었고 나아가 이웃 사랑 베풂이었다.
그리고 마당/자연과 방을 가로막는 게 겨우 한지(韓紙)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 있으나마나한 경계일 뿐이다. 달이 중천에 떴다하면, 한지를 뚫고 은은하게 방안을 비추어 그 정경에, 설혹 시인(詩人)이 아니라 해도 다른 이의 시 한편 쯤 읊조리게 한다. 그러니 일상생활이 집으로 인해 소통하고 대화하고 나눔이었다. 시인되기도 했다. 또 이웃 간의 두레이었다. 그 옛날의 집들은 위와 같은 취지에서 이 땅위에서 모두가 격의 없이 정겹게 살도록 했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압축적인 성장만을 추구한 끝에 나타난 게 바로 아파트라는 괴물 같이 위로만 치솟기만 하는 닫친 공간 같은 방이다. 이 탓에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지킨답시고 방마다 열쇄까지 채운다. 가족 간에도 일단 들어가려면, 손으로 노크라는 것을 해야 한다. 가족 간에도 이런 형편이니, 이웃 간은 말해도 소용이 없다.
이를 보다 못해, 지난 1996년부터 대구YMCA 김영민 사무총장이 ‘담장 허물기’ 시민운동을 펼쳤다. 결과, 현재까지 총 663개소, 26.6km의 담장을 허물고 350,294㎡의 가로공원이 대구시에 태어났다. 이게 또 교과서에 실리고, 전국의 지자체가 대구시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이의 폭을 더 넓히기 위해 올해 대구시가 담장 허물기에서 한발 더 나가, ‘담장너머 사랑(愛) 시민운동’(이후 담장 너머)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아예 ‘담장안하기’다.
대구시가 지난 26일 한국토지공사, 대구도시공사, 대한건설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건축사협회, 행정기관 등으로 협의체를 구성했다. 앞으로 이 협의체가 수목지원, 조경자문, 주변 환경 등을 맡는다. 올해 상반기에 담장너머 사업을 접수한 결과 45건이 들어왔다. 이 가운데 31곳을 선정했다. 이 사업에 위의 업체 전문가들이 담장너머사업에 실질적이고도 실천가능하도로 적극 협조한다.
지난 1996년까지 담장 허물기 사업을 함으로써 경제적인 가치로 따진다면, 연간 13억 원 정도라고 한다. 한 여름 기온 상승도 억제한다. 가로 공원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대신에 산소를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대구시의 모습도 바꾸고 나아가 산소에서 경제까지 효과를 창출했다. 그러나 담장 허물기를 두고 꼭 돈으로만 계산하는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이웃사랑을 어찌 자본으로만 따질 수가 있겠는가.
하여튼 담장너머는 이웃과 간격 좁히기이다. 간격이 좁아질수록 사이가 가깝다. 따라서 사람사이도 가까워진다. 이렇게 사람사이 가까운 거리를 ‘사회적 거리’라고도 한다. 아주 밀접하게 가까운 사람과의 거리는 0~45cm이다. 보통 가까운 거리는 45cm~1.2m이다. 통상적인 ‘사회적 거리’는 1.2m~3.6m이며, 공간적인 거리는 3.6m이상이다.(에드워드 홀/인류학자,비교문화학자= 인간의 거리를 4단계로 구분. 각 영역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행위 나타나고, 만약 영역과 불일치 땐 심리적 육체적인 불쾌감을 초래한다.)
이를 담장너머에 대입시켜본다. 담장너머는 집과 집 사이에서 일종의 공간적인 거리이다. 공간적인 거리가 3.6m라면, 네댓 발짝 거리이다. 이웃과 대화가 충분하다. 까치발도 아예 필요 없다. 여기에서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집과 사람 사이가 통상적인 사회적인 거리가 된다. 이쯤까지만 가면, 밀접한 거리로 가려면, 한 발짝만이 남았다. 이제부터는 이웃이 따로 없다. 모두가 우리 이웃이다. 서로 간에 사람살이 냄새도 맡는다.
‘담장너머사랑(愛) 시민운동’이 집 뿐 만이 아니라, ‘사람사이도 사랑(愛)’으로 승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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