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최보아기자] "할머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오랜 세월 동안 가슴에 묻고 지내시느라 얼마나 힘드셨나요. 할머니도 저와 같은 시절이 있으셨죠.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의 낙엽을 보고도 행복해서 저절로 웃음이 나고, 친구들과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소녀 시절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제가 잃어버린 그 시간과 아픔의 깊이를 모두 알 수 없지만 할머니를 닮은 소녀상을 보고 정말로 위안이 되셨으면 좋겠어요."꽃보다 고운 할머니에게 유채연(환호여중 1) 양이 보내는 편지의 한 부분이다.채연 양은 17일 환호공원에서 열린 포항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 눈물의 편지를 낭독했다.이어 다소곳이 의자에 앉은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추울까 하는 걱정에 포항시내에서 직접 구입했다는 빨간 털모자와 목도리를 둘러주었다.이날 불편한 몸을 이끌고 행사에 참석한 박필근(87·포항시 북구 죽장면) 위안부 할머니에게도 목도리를 선물해 훈훈함을 더했다.소녀상 걱정 탓에 밤잠을 설쳤다는 박 할머니는 목도리를 선물한 채연 양의 두 손을 꼭 잡고 연신 고맙다며 눈물을 훔쳤다.홀로 생활하는 박 할머니가 하루 일상이 무료하다고 말하자, 채연 양의 어머니는 연락하고 지내자며 두 사람은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도 했다. 한편 경북에서 두 번째로 설치된 `포항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 이칠구 포항시의회 의장 등 내빈과 수백 명의 시민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행사는 윤정숙 집행위원장의 경과보고, 박춘순 포항시여성단체협의회장이자 상임대표의 인사말, 박승대 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이자 상임위원의 비문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포항 평화의 소녀상 건립 시민추진위원회는 지난 8월 13일 발대식을 갖고 모금한 지 2달여 만에 시민 3천583명과 단체 87곳이 참여해 8천736만800원을 모금, 목표 금액 6천만 원을 초과·달성했다.모금기간 중 유채연 양은 독도 글짓기대회에서 받은 상금 40만 원을, 항구초 4학년생들은 용돈 15만 5천 원을 보내는 등 뜻깊은 행사에 동참했다.모금 남은 금액 중 일부는 나눔의 집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기부하고 1천만 원은 박필근 할머니에게 전달했다.성금 전달식에 참석한 박 할머니는 "여러분들 모두 고맙습니다"라는 묵직한 한 마디에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옷깃을 파고드는 매서운 겨울바람도 아픔의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이 실현되는 세상을 향한 뜨거운 열정만은 막지 못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