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긴 대사도 외워진다는
늙은 여배우의 고백을 들으며
산다는 것은 전쟁이지,
웅얼거리다
적과 싸우기 위해
불쌍한 백성의 밥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순신의 밥을 떠올린다
세상엔 너무 작아서
안 보이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커서 안 보이는 것도 있다는 것
거대한 밥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가스배관을 타고 오르는
도둑의 머리 위에서, 홀로
빛나는 스텐 밥그릇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먼 바다로 나가 밥알
건져 올리는 어부들의 그물을 생각다가,
영어 단어 하나하나가 밥알인
이민자들의 밥공기를 어루만지다가
지구라는 거대한 밥그릇을 깨닫는다
다닥다닥
붙은 밥알이 우리라는 거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기도 한다는 거
시읽기
인간이나 동물이나 먹이를 거부하고는 초연할 재간이 없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들이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공익을 위한 밥이거나 개인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밥이거나, 먹기 위하거나 살기 위해 먹거나 밥 앞에서 우리는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맹렬하게, 뽕 잎사귀를 갉아 먹는 누에처럼 부지런하게 밥이 되기도 하고 먹히기도 하면서 자신의 몫을 위해 사력을 다한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먹이그물은 단순히 일직선이 아니라 생산자에서 다양한 소비자로 연결되는 섭식관계가 형성되는 모든 먹이사슬의 구조에서 한 단계라도 사라지면 생태계 전체의 파괴를 초래하게 된다. 모든 생명체가 각기 다른 생태로 살아가지만 지구라는 거대한 밥그릇 속에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기도 하면서 우리는 다닥다닥 붙은 밥알이다. 우리는 지금 지구촌의 거대한 먹이사슬의 구조 속에 물질비만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과소유를 넘어 축적과잉으로 모든 불행을 초래하게 되는 밥, 적당하게 먹고, 알맞게 고루고루 나누고 살면 안 될까?
‘지구는 거대한 밥그릇, 우리는 다닥다닥 붙은 밥알’이라 표현한 시인의 시각이 따듯하고 시원하게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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