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고 김종원 원장이 피와 땀으로 일궈 놓은 포항선린병원이 최종 부도를 냈다.
이 소식을 들은 설립자의 심정은 어떨까?
이미 고인이 된 분이지만 선린병원이 하루 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뜻에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고 김종원 원장의 일생을 되새겨본다.
특히 고의로 부도를 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김 원장의 삶의 철학을 아는 많은 시민들이 너무 안타까워하고 있다.
“우리 곁에 잠시 왔다간 작은 예수”, “전쟁고아의 아버지”, “한국의 슈바이처”, “모든 것을 주고간 선한 사마리아인”.
지난 2007년 3월,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포항선린병원 설립자인 김종원 원장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일평생 고아와 어린이 진료에 헌신해 오던 그는 자신이 설립한 병원과 대학을 사회에 환원한 채 사랑과 봉사만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신지 만 8년이 지났다.
김 원장의 피 눈물이 베인 선린병원이 이사진들의 잘못으로 부도라는 오명으로 남기고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 병원은 김 원장의 성실함으로 한 때는 경북 제일의 종합병원으로 우뚝 서기도 했었다.
살아계셨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사태는 안 일어났을 것이다.
1914년 평안북도 초산군에서 10남매 중에서 맏이로 태어난 김 원장은 일본 강점기 때 부친으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명석했던 그는 신의주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의 삶을 시작했다. 의사가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아팠던 병이 나중에 소아과 의사가 된 계기였다고 한다.
6ㆍ25전쟁이 터지면서 그는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겨야 했다.
한번은 친척을 남쪽으로 피난시키다가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죽음의 공포를 체험했다.
그러나 그가 치료해서 살려준 러시아 사령관의 아들 덕분에 풀려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오게 됐고 이것이 이산가족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를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부르는 이유가 됐다.
그는 안타깝게도 아들 셋은 조부에게 맡기고 아내와 함께 젖먹이 아들 하나와 딸 둘만 데리고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곧 찾으러 가겠다고 약속 했지만 그는 세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대구 동산병원에서 의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가 한 번은 포항으로 내려갔다가 진료하던 중에 전쟁고아를 만난 일이 있다. 폐허가 된 포항 길거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북한에 두고 온 세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다 전쟁고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았고 고아들의 가정인 선린애육원과 선린병원을 설립했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다들 싫어하는 소아과만 진료를 고집하셨다.
소아과엔 항상 많은 어린이 환자들이 밀려들어 식사할 시간도 없이 환자를 돌봤다고 한다.
환자를 향한 그의 열정은 월남한 막내아들이 사고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손에서 청진기를 놓지 않은 일화는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그의 막내아들이 경기고등학교에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로 갔다가 여관에서 연탄가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들은 그는 서울에 있는 의사들에게 아들을 맡긴 채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했고 결국 아들의 임종도 보지 못했던 것.
그는 일평생 행동하는 신앙인의 삶을 보여줬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큐티(묵상시간)와 1백여 개의 기도제목을 놓고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김 원장을 오랫동안 같은 교회에서 선배 장로로 모셔온 한 지인은 “자신은 그 흔한 명품 구두 한 켤레 사신 적이 없으신 분인데~~~”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하루 속히 병원이 정상화되기를 기도하겠다고 했다.
그분의 업적이 너무 많고 훌륭해 원고지 몇 장에 옮겨 담을 수가 없어서 그냥 ‘예수의 삶을 사시다가 가신 분’으로 적었다.
김 원장 생전에는 다른 병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던 병원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도록 경영을 하게 됐는지 이사진들은 김 원장의 유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
사탄에 속아 해메는 이사진들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병원 정상화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의 업적과 언행을 살펴보면 그는 진정 우리 곁에 잠시 왔다가간 작은 예수였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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