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빈집에 들렀다
샘가에 뒹굴고 있는 허리 부러진 숫돌
제 몸 갈아낸 돌의 나이테는
얼마나 많은 날을 세웠던가
얼마나 단단한 고집들을 구슬렸던가
강한 것은 연한 것이 구스르고
연한 것은 강한 것이 구스르는
연마의 법칙
아버지 지문 돌가루에 흘러가고
어머니 잔소리가 칼자루만 남아
난도질당하는 샘가
무딘 날이 있다
대장간 갓 나온 검은 칼도
숫돌의 다스림을 거치지 않고는
제 구실을 못하는 엇배기*
숫돌의 날숨을 받아 새파랗게 세워졌을 때
세상 겁 없이 쳐내어 길을 내는
우물가 숫돌 나이테
* 제 몫을 다하지 못해 반품의 품삯을 받는 초보 일꾼
◆시 읽기◆
시인이 오랜만에 들린 고향집, 식구들 다 떠난 빈집의 샘가에 나둥그러진 숫돌을 발견한다. 이어 낡고 허물어져 잡풀들만 가득한 빈집의 허리 잘린 숫돌에서 부모님을 발견한다. 그리고 지문 닳은 아버지의 성실과 애살궂은 어머니의 잔소리로 연마되어온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대장간 갓 나온 검은 칼도 숫돌의 다스림을 거치지 않고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숫돌의 날숨을 받아 새파랗게 날이 세워졌을 때 기대치만큼의 역할을 치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날을 세웠던가 / 얼마나 단단한 고집들을 구슬렸던가 /
강한 것은 연한 것이 구스르고 / 연한 것은 강한 것이 구스르는 / 연마의 법칙
사람도 그렇다. 인간이 사람구실을 하기위해서는 숱한 연마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정과 사회의 규범 속에서 벼리고, 구스르고, 시련을 견뎌내는 성장과정을 거쳐 성숙해져야 당당하게 자기의 몫을 살아내고 사회의 일원으로써의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두 떠나버린 빈집에 부모님의 다스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숫돌....무딘 칼날을 가느라 허리 부러지도록 제 몸을 깎아 낸 숫돌처럼, 일생 자식들을 벼리느라 당신의 몸을 깎아냈을 부모님을 떠올리는 시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반듯하게 연마된 사람인지를 보게 된다. 오랜 세월의 뒷켠에 버려져 아무렇지도 않게 나뒹구는 숫돌 하나에서도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시인의 사람됨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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