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라고 해서 경로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농촌에서 경로당은 매우 의미심장한 곳이다. 마을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유통되는 곳이기도 하다. 때로는 근거 없는 낭설, 유언비어가 확대 재생산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가 농촌에서 와서 지인에게 들은 얘기 중에서 두고두고 실감나는 부분이 있다. 얘기인 즉, 00이 넘은 어르신들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다 믿거나 받아들이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다. 그런데 온통 어르신으로 둘러싸여 있는 농촌에서 살면서 지금은 그의 말을 점점 실감하고 있다. 모든 노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때로는 누군가에서 들은 얘기를 정확히 잘 전달하기 힘들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신께서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짐작과 추측이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사실이 아님에도 불고하고 거의 사실로 확정되어 버리곤 한다. 특히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제3자에 관한 얘기는 참 조심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떠나 우리는 너무 쉽게 폭로, 단정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가 농촌에 살면서 절감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농촌의 특성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폐쇄성의 문제이다. 농촌에서 나고 평생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의 경우 아무리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세상에 산다고 하더라도 폐쇄성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귀농귀촌인이 농촌에 와서 살 때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문화충격’을 받을 때가 많이 있다. 그리고 그 문화충격의 한 가운데는 농촌의 폐쇄성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남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문화적인 차이가 아니라 노인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톡특한 성질의 것일 수도 있고 한 개인의 인격의 문제일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복잡한 도시사회에서 남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반드시 법적인 책임의 문제가 따른다. 소위 명예훼손의 문제이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도 농촌의 또 다른 특성인 관습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많은 경우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거나 오래 동안 한 마을에서 형님, 아우 하면서 지내는 탓에 어지간한 불편한 일이 생겨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귀농귀촌인들이 이런 폐쇄성, 관습을 그대로 따를지는 미지수이다. 기존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귀농귀촌인은 입바른 소리 잘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치부할런지 모르지만 그들은 이렇게 정글과 같은 도시생활을 헤쳐 나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농촌에 와서 터무니 없는 낭설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살아야 한다면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이 차이가 조금만 나도 멀쩡한 부부가 재혼부부가 되어 버리거나 불륜의 그림자를 씌어서야 되겠는가. 모든 헛소문과 낭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마을분위기를 주도하는 경로당 문화와 상당히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하게 보인다. 최근 상주지역의 ‘농약사이다’ 사건을 대하면서 필자는 귀농상담가로서 내심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행여나 귀농귀촌인과 기존의 마을주민과의 불화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을까 하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개연성은 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사건사고는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일로 인하여 경로당 문화를 한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성경의 잠언에도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이 내려간다’ 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그 당사자가 겪는 고통은 ‘뼛속 깊이’ 사무친다는 말이다. 이번 일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앞으로 더욱 아름답고 훈훈한 경로당 문화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서 젊은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또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반갑게 받아들이는 그런 마을공동체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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