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으로 난 길에는 거울이 하나 서 있었다 걸어오던 길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그 거울 속의 고요를 눈여겨보았다 뚜벅뚜벅 걸어갔을 아버지의 발자국은 스미고 이어 내 발자국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아들의 손을 잡고 갈참나무 한 그루 쓸쓸히 잎을 비우고 있었다 싸리나무 한 그루도 가파른 제 어깨를 스스로 보듬어 안고 있었다 순간 숲의 풍경을 찢으며 흰 구름 한 자락 거울 속 고요를 맑게 지우고 간다 말채나무 채찍이 숲의 등짝을 후려 팬다 가없는 시간의 자맥질 속으로 어둠이 와 숲의 고요와 깊이를 재우고 있다 ◆시 읽기◆ 맑고 투명한 풍경 속에 들면 마음도 맑고 투명해진다. 가을숲길로 들어선 시인은 맑고 투명한 길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거울 같이 맑고 투명해진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울창한 숲길을 걷듯 뚜벅뚜벅 걸어갔을 아버지의 일생과 아들의 손을 잡고 갈참나무 한 그루처럼 쓸쓸히 잎을 비우고 있는 시인의 생이 보인다. 맑고 투명한 가을 숲길에서 진중하게 가라앉힌 마음의 거울로 자신의 인생을 계량하는 것이다. 문득 돌아본 가없는 시간의 자맥질....누구나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등짝을 후려 패는 사연들이 있다. 그러나 회한의 가파른 어깨를 보듬으며, 숱한 질곡을 이겨내고 견디어 온 이들은 비움과 긍정에 익숙하다. 또한 깨어있는 의식을 가졌다. 마음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살 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역경과 고난으로 나약해지고 흐트러지는 자신을 자연의 청정함 속에 헹구면서 자연과 우주와 순환을 새롭게 읽어내며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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