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길고양이들에게 저녁밥을 주러 간 친구를 기다리며 골목 끝 빈집을 들여다본다 목련꽃 흰 살점들이 허공을 타고 내려오는 밤 누구일까 이리도 환한 마침표를 찍고 떠난 사람은 차갑고 얇은 슬픔을 줍는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잃어버린 것이 많은 나는 배고픈 길고양이들에게 저녁밥을 주러 간 친구를 기다리며 목련꽃 하얀 빈집을 한없이 들여다본다 달이 친구보다 먼저 등 뒤로 와서 노랗고 따스한 알을 살며시 쥐여 준다 ▲ 문정희 시인 / 문학박사.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월간문학》으로 등단. 동국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서울여대 대학원 졸업. 현 한국시인협회장, 동국대 석좌교수. 전 고려대 교수. 시집으로『오라, 거짓 사랑아』외 다수. 현대문학상·소월시문학상·정지용문학상·천상병시문학상·육사시문학상·최우수예술가상·세계시인포럼 올해의 시인상·스웨덴 시카다상 등 수상. 시의 산책로 시의 산책로 빈집을 바라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다. 한때는 그 안에 어느 일가족이 정겨이 부대끼며 삶을 일구었을 자리였을 법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자리가 흉물스러워지고 어느 날 타인에게는 무덤처럼 섬뜩하게 와 닿기도 하지만, 시인은 목련 빛과 달빛으로 감싸며 따스한 인간애를 보낸다. 하지만 그 시심 속에 스며 있는 깊은 슬픔을 어찌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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