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로쿠스(Locus)를 장소로 번역한다. 지역(Local)의 의미도 여기서 파생되어 나왔다. 장소, 위치라는 뜻과 함께 힘의 근원이나 중심이라는 다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필자가 장소를 Place라든지 Site를 사용하지 않고 Locus를 굳이 사용하는 것은 지역이면서 동시에 힘의 중심이라는 의미가 갖고 있는 심오함 때문이다.
로쿠스 디자인은 도시와 건축을 매개하는 분야로서 도시환경에서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 삶의 방식과 형식 그리고 양식에 깊이 관계하고 있는 디자인 영역 즉, 장소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페인을 여행하였을 때, 이름도 별로 들어보지 못한 지방의 소도시가 장소적으로 매력적이며 도시민들의 자긍심 또한 대단한 것을 느끼면서 이런 지역이 바로 로쿠스 디자인이 살아있는 장소라고 깨닫고 그 곳을 여행하며 그 도시에서 느꼈던 시적 장소 환경과 깊이 있는 도시 철학에 매료되어 장차 은퇴 후 이런 장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도시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 도시론’이라는 저서에서 ‘창조성은 거주하기 좋은 장소를 찾는다’고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정보산업화 사회가 공간에서 장소로 가치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국가 간 영역의 장벽이 무너지고 기술문명의 발전으로 도시 간 이동이 손쉽게 가능해진 시대에 살면서 도시의 흥망이 재능과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자들 그리고 그들이 집중화해서 거주할 수 있는 장소 이미지와 조건 여하에 좌우된다는 이론은 명쾌하면서도 왠지 단순기능주의적 냄새를 풍긴다.
그러나 비록 도시에 대한 시선이 외부적이긴 하지만 침체된 내부를 활성화시키는 명분은 충분히 있다.
‘포항은 어떤 도시 이미지일까?’ 이 질문에 대해 포항시민과 외지인의 답변은 나뉘어 질 수 있다. 외지인은 대부분 철강공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로 대변되는 산업도시 이미지, 포항시민은 죽도시장과 동빈내항이 있는 어업 항구도시 이미지라고 답변할 수 있다. 케빈린치는 도시의 이미지(Image of City)에서 가독성 즉, 알아보기 쉬움에 대해 설명하면서 물리적 환경으로서 5가지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랜드마크(Landmark), 교점(Node), 통로(Path), 가장자리(Edge), 구역(District)으로 구분하여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심리적 이미지의 상관관계를 언급하였다.
포항의 도시 이미지에 대한 가독성을 어렵게 하는 원인은 여러가지로 들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광장이나 소통의 공간으로 대표하는 오픈 스페이스 즉, 교점(Node)공간의 빈약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필자가 여러 번 해도동 근방에서 길을 잃고 헤맨 경험도 분석해보면 위치를 인식할 수 있는 장소성의 불명확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도시 환경에 있어서 복잡함과 다양성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상반된 개념이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계획성의 유무로 나뉜다. 포항의 도시 경관은 전자가 아직 우세하다. 포항의 도시 이미지가 편안함, 명료함, 경쾌함과 같은 긍정적 평가보다는 복잡하고 어두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도시가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철학에 기반을 둔 기본기를 소홀히 하고 짧은 시간에 효과를 낼 수 있는 단기전략에 에너지를 쏟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과 객기는 기본기가 있느냐 여부로 판가름 난다. 예를 들어 피카소가 당대 최고의 기본기를 갖춘 데생 실력의 소유자였음을 간과한 사람들은 유치원 생의 낙서와 피카소의 큐비즘 그림의 차이를 못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포항 구시가지를 상공에서 촬영하면 학교 운동장과 공공건축물을 제외하고 오픈 스페이스 즉, 교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나폴레옹의 유배지로 유명한 시칠리아의 시라쿠사(Syracusa)를 상공에서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아도 포항 구시가지는 오픈 스페이스가 현격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세포와 세포 사이의 교류가 원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소통의 장으로서의 오픈 스페이스가 도시 곳곳에 명소로서 자리잡아야 한다. 그 결과, 삶의 공동체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체성이 도시 이미지에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것이다.
도시를 신진대사가 가능한 생명체라는 이론으로 1960년대 전세계에 알린 메타볼리즘 건축운동은 비록 단명하였지만 그들이 남긴 도시 이론이 도심 공동화와 도시 팽창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면 이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포항 구도심의 경우도 예외 없이 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은 지 오래되었다. 포항시청의 이전을 계기로 공동화 현상은 가속화되어 이제는 폐허처럼 보이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마저 감돌고 있다.
신문지상과 방송을 통하여 도시재생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오는 것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행으로 생각하는데, ‘무엇’을 바꾸고 계획하는 것은 들리지만 ‘어떻게’에 대한 담론이 부족해 보인다.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있고, 독특한 개성을 갖고 때로는 의견대립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과정을 통해서 시민의식이 성숙되고 소속감이 분명해지고 도시 환경에 대해 관망자에서 참여자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도시민의 성숙된 참여 없이는 성공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중소지방 도시에서 이미 정착된 마치쯔꾸리(마을 만들기)는 민관이 협력해서 일구어 낸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서 높게 평가 받고 있고 현재도 도시민의 삶의 일상 가운데서 진행되고 있다. 그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하자면 첫째로, 지역의 특성(자연, 지리, 산업 등)을 충분히 고려해서 파악한 후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 후 많은 담론 과정을 거쳐서 결정한다. 둘째로, 주민 참여형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주민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갖도록 한다. 셋째로, 민. 관의 파트너십 속에서 관은 목표를 세울 때 민을 참여시키고 행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들어간다.
넷째로, 지역과 외부의 전문가를 선정할 때 전문성과 함께 헌신적인 열의를 판단하여 정하고 그들의 전문적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행정력을 동원한다. 다섯째, 도시리더가 시대를 읽는 깊은 통찰력과 철학을 갖고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분명한 소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해외의 성공적이라고 평가 받는 도시 재생사업 중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를 진두 지휘한 호소가와 도지사(후에 총리 됨)가 한 명언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고의 전문가 그룹을 머리로 하고, 관은 손발이 될 때 비로소 명품도시의 첫 걸음이 시작된다.’앞으로 포항에서 진행되는 도시재생프로젝트에서 필히 참고해야 할 내용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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