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戀書)
문 효 치
편지를
어떻게 말로 쓸 수 있으리오
잘 익은 노을처럼
종이 가득 진한 물이 드는 걸
다시 붓을 들어 글씨를 쓰려 하면
어지러운 아지랑이가 눈을 가리고
그래도 한 마디 꼭 적으려 하면
어느새 종이는 불타고 있으니
그대여
사랑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리오
다만
벙어리가 되어 서성이고만 있을 뿐
▲ 문효치 / 1943년 전북 군산 출생. 1966년 서울신문,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전 PEN한국본부 이사장. 시집『연기 속에 서서』외 다수. 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김삿갓문학상, PEN문학상 등 수상.
시의 산책로 언어로는 본시 사람의 마음을 다 적을 수 없는 법이다. 하물며 사랑의 표현이야 오죽 하리. 독자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화자(話者)의 애절한 마음이 시행마다 투영돼 있음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언어의 한계라는 벽을 공감한다. 벙어리로 남아 마음을 태우는 존재는 비단 시인만은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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