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2년째 지방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며칠전 병무청에서 시행하는 ‘2015년 병역명문가 선발’행사에 대구ㆍ경북 40여 가문과 함께 우리 가문이 선정되는 영광을 맞이 했다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다
일찌기 조부께서는 고향 마을 훈장을 하시고 후학을 양성하시던 중 독립 운동 관련 활동을 하시다가 일제에 모진 고문을 당하셨고 그 휴우증 치료를 위해 전답을 모두 처분해 가세는 기울었으며 일제의 감시와 병마에 시달리다 일찍 숨을 거두셨다
“일본놈들이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배울수 없다”는 조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와 삼촌들은 혹독한 가난 속에 독학을 하였다.
6ㆍ25가 터지자 아버지 3형제가 모두 전쟁터로 나가 당시 미혼인 삼촌이 강원도 김화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는 통지를 받았으나 난리통에 유골조차 남은 가족들 품에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후로 할머니가 군청에서 매달 받던 ‘눈물의 유족연금’은 철부지 손자의 작은 손에 쥐어져 학비와 용돈이 되기도 했고?
휴전후 큰집의 대문 옆에는 ‘충절의 집’이라는 명패가 걸렸지만 독립운동과 한국 전쟁으로 집안의 가난은 여지 없이 대물림 되고 말았다
세월은 흘러서 형과 나는 2군단과 특전사에서 병역 의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조카도 올해초 강원도 전방에서 군사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있다
이리하여 뜻깊게도 아버지 세대와 우리 형제 세대, 조카 세대 3대의 남자 전원이 신성한 국방의무를 온전히 마치게 되었다
병역의무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로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랏일을 걱정함에 있어 여야, 진보ㆍ보수가 서로 다른 의견으로 다툼 하더라도 그것은 나라가 온전할때‥안보가 지켜질때 가능한 일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가난의 대물림은 물론 그 어떤 희생도 두려워 하지 않고 나라 사랑을 몸소 실천한 선각자들과, 소중한 목숨도 초개와 같이 버림으로서 더욱 소중한 조국산하를 지켜낸 수많은 호국영령들의 큰 뜻을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겨 추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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