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류길호기자]
朴대통령 발언 13일만에…“의총 뜻 받들어 물러나”
여권 내홍 표면적 봉합 불구…계파 갈등 불씨 잠복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지난 2월 2일 의원총회를 통해 원내대표에 당선된 지 156일만이다.
지난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유 원내대표를 사실상 불신임한 뒤 13일만이다.
이로써 여야 합의로 지난 5월 29일 새벽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을 도화선으로 폭발했던 대통령과 집권 여당 2인자와의 충돌, 이로 인한 여권의 심각한 내홍 사태는 ‘표면적으로’일단락됐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유 원내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 원내대표 거취 논의를 위한 의원총회를 열고 4시간 가까운 격론 끝에 유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를 권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초 논의됐던 사퇴권고 결의안 채택 방식은 취하지 않은 대신 이날 의총에서 모아진 사퇴권고 의견을 김무성 대표가 직접 유 원내대표를 찾아가 전달했고, 유 원내대표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이를 수용했다.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와 만나고 나와 “의총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대다수의 결론은 책임 여부를 떠나서 이유를 막론하고 현 상태에서는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세여서 의총에서 그런 결론을 냈다”며 “유 원내대표가 그 뜻을 수용해서 지금 바로 입장을 표명할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유 원내대표는 김 대표가 떠난 뒤 즉각 국회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을 찾아 마이크를 잡고 “저는 오늘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사퇴를 발표했다.
그는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은 누구보다 저의 책임이 크다”며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라며 거듭 국민에게 사과했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요구해 왔던 유일한 사태 해결책인 원내대표의 사퇴가 현실화하면서 사태는 봉합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새누리당은 조속히 차기 원내대표 선출 절차를 밟아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산적한 국정 현안 챙기기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국회법 거부권 정국 및 유 원내대표 사퇴 과정에서 빚어진 극심한 여권의 혼란상으로 인해 당분간 여권의 긴장도는 쉽사리 이완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 원내대표 사퇴가 내홍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유 원내대표도 이날 사퇴 회견문을 통해 박 대통령과 친박계 등에 대한 반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유 원내대표는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였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며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과 정치적 결별을 분명히 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정치를 계속 펼쳐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날 사퇴 회견문을 읽어 내려가는 유 원내대표의 목소리는 감정에 북받친 듯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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