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상담을 하느라 스님과 마주 앉았는데 보이차를 따라놓고는 잔을 들고 있어보라고 한다 작은 찻잔도 오래 들고 있으니 무겁다 ㅡ 그만 내려놓으시오 나는 팔이 시원해졌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는 말씀이 나를 오랫동안 따라다닌다 도심의 화분에 담긴 꽃과 도랑에 고인 오수를 지나오면서 구름 속에 심은 꽃 구름 속에 고인 강을 생각해 본다 ◆시 읽기◆ 인생 상담 앞에 스님이 미리 내놓은 명쾌한 답이다. 보이차 그 작고 가벼운 찻잔도 오래 들고 있으니 무거워 지고, 내려놓으면 그만큼 편해진다는 것을 직접 느껴 깨치도록 한 스님의 가르침이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 (樹木等到花 謝才能結果, 江水流到舍 江才能入海)라는 화엄경의 한 구절이 시인을 오랫동안 따라다닌 것은 찌든 도심의 삶들이 안타깝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화면에 잠시 보여주고 사라질 뿐인 것들을 마치 진짜의 삶인 것 같은 착각 속에 살면서도 내가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줄도 모른 채 살고 있다. 탐욕과 집착 때문에 물이 물처럼 맑지 못하고, 나무와 꽃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사람과 인생이 늘 구름 낀 것처럼 흐린 것이다. 나무가 정성들여 피운 꽃을 버려야 만이 튼실한 열매를 맺듯,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리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욕심을 버려야 인생의 고운 열매를 맺는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모든 지식과 앎(지식, 철학, 사상, 종교 등)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냈지만,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을 벗어나지 못해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모든 지식들을 버리지 않고서는 청정한 맑고 맑은 순수한 어린애 같고 파란 하늘같은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작은 찻잔도 오래들고 있으면 무거워지듯 아무리 작은 집착도 내려놓지 않으면 점점 더 커지는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알면서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탐욕과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내려놓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행동을 바꾸고 말을 바꾸고 생각을 바꿀 때마다 새 삶이 시작된다. 무엇을 내려놓고, 어떻게 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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