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는 가훈이 있고 학교에는 교훈이, 회사에는 사훈이, 국가에는 국정지표가 있다. 이러한 것들은 각 조직체 마다 행동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 주는 행동 규범이자 실천 덕목이고 지침이다. 가정이나 학교, 회사나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자기가 속한 조직체를 건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구성원이 가져야 할 의무이자 기본자세이다.
가훈을 만든다는 것은 그 집안의 정신을 세우는 것과 같다.
가훈을 만들어서 가훈대로 실천하는 집이 얼마나 될까?
물론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명문 가문에는 대부분 가훈이 있어서 실천과 반성을 통해 뼈대 있는 집안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지만 가훈은 있으나 실천이 안 되는 가정이 있을 것이고 아예 가훈이 없는 가정도 무척 많으리라 생각된다.
가정의 교훈 즉 가훈은 한 집안의 조상이나 어른들이 후손들에게 일러 주는 가르침이며 한 집안의 도덕관으로 자손에 대한 훈계이자 가정의 지표이다.
몇몇 가문의 가훈을 살펴보면 청백리의 표상 보백당 김계행 선생의 유훈으로 안동 김씨 후손들의 가훈은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 지신근신(持身謹愼) 대인충후(待人忠厚)이다. “우리집에는 보물이 없으나 보물이라면 오직 하나 청백리 뿐 이다. 몸을 삼가고 가지런히 하며 충성스런 마음을 두터이 하라”이다.
3대 부자가 없다는데 경주 최부자 집은 300년 동안 만석꾼 부자로 살아왔다. 18,19세기의 근대화 과정과 일제 침략, 남북 분단에 이르는 근세사의 험한 격랑을 겪으며 오랫동안 부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배경에는 여섯 가지의 가훈 즉 육훈(六訓)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개하면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라.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 주변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이다. 즉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며 늘 근검절약하게 살라는 정신을 후대에 심어 주었기 때문에 3대 부자로 명문가의 명성을 잇지 않았을까?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인양마을 재령이씨 영해 입향조 운악 이함가의 가훈은 ‘지고 밑지라’이다. 삼보컴퓨터 창업자인 이용태씨는 재령이씨 운악 이함 종가의 17대 종손으로 한때 학원을 경영하기도 했다. 학원이 경영난에 허덕이자 그는 동업자들에게 자금을 자기가 책임지겠다며 약속을 하고 신뢰를 쌓아 갔다. 그 결과 학원은 오히려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조상이 물려준 ‘지고 밑지라’는 가훈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이다. 그 이후 학원이 더욱 번창하자 그가 선택한 것이 1980년대 삼보컴퓨터를 창업하여 국내 최초로 교통신호 전산화 주도, 정부의 전산행정망 설치, 퍼스널 컴퓨터 개발 및 생산, 초고속 인터넷 ‘두루넷’설립 등이었다. 이러한 사업은 모두 ‘지고 밑지라’라는 가훈 실천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퇴계 이황가 가훈은 심산무림지중유일난초(深山茂林之中有一蘭草) 종일훈향부자지기위향(終日薰香不自知其爲香) 차정위기지학야(此正爲己之學也)이다. 즉 ‘학문이란 깊은 산골 난초와 같아서 알리지 않아도 종일 향내가 난다’라는 내용이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주자의 사상을 깊게 연구하여 성리학 발달의 기초를 마련한 대학자의 가문다운 가훈이다.
우리나라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가의 가훈은 ‘당당한 자긍심’이다. 1925년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은 고성 이씨 17대 장손으로 1858년에 태어났다. 선생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망설임없이 의병 자금 지원, 대한협회 안동 지부 조직, 협동학교 설립 등의 활동을 했다.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지자 1911년 1월 집안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오십여 명의 가솔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해 서간도로 가서 최초의 독립운동 조직인 경학사, 부민단, 한족회, 군사학교인 신흥무관학교 등의 단체를 설립하는 등 조국의 해방과 독립운동에 온 힘을 쏟은 ‘당당한 자긍심’을 가진 진정한 조선의 선비였다.
조선의 5대 명재상 중의 한 사람으로 성리학자인 서애 류성룡가의 가훈은 ‘충효만큼 더 중요한 사업은 없다.’이다. 임진왜란 발발 직전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이순신을 천거하였고 임란 후에는 징비록을 저술한 것도 가훈이 나라를 지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가훈은 가족이 지켜야 할 도덕적 덕목이자 가정의 윤리적 지침이며 개인과 집안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가훈이 명문 가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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