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전화기가 들어 있다 머릿속이 또 엉켰나 보다 며칠째 읽고 있던 책을 펼치다 말고 주렁주렁 매달린 수세미를 따다 찜통에 넣고 푹푹 삶는다 파란 껍질 벗겨지는 속 촘촘히 얽힌 사연들이 뿌옇게 우러난다 어린 두 아들 잃고, 시앗까지 본 속을 싹이고 싹이던 어머니 올올이 박혔던 기억을 잃어버린 날은 수세미처럼 엉킨 머릿속을 한 올 한 올 풀어가며 섬돌아래 쭈그리고 앉으셨지 흐물흐물 삶아진 씨앗을 빼고 흔들어 씻어 쓰기에 알맞도록 자른 수세미 뽀얀 속살을 말리는 해거름 내 지천명이 성긴 그물을 짜고 있는 서녘 하늘에 노을 밴 꽃잎처럼 살랑살랑 떠다니는 어머니를 읽고 또 읽는다 ◆시 읽기◆ 설거지 할 때 그릇을 씻는 물건이 수세미다. 간편하고 다양한 수세미가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연수세미를 만들어 쓰는 자연친화적인 알뜰살림꾼에게도 머릿속 엉키는 날이 잦아졌다. 읽히지 않는 책을 덮고, 수세미를 따다가 푹푹 삶는다. 어린 두 아들 잃고, 시앗까지 본 어머니는 그 엉긴 속을 어찌 가다듬었을까? 어쩌다 정신을 놓아버린 날은 섬돌아래 쭈그리고 앉아계시던 어머니,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이 되어서야 어머니를 헤아리다니.....시인의 엉긴 속이 어머니와 겹쳐진다. 시인은 뒤엉킨 심사가 불안과 강박, 정체성의 혼란, 트라우마 등 마음의 매듭을 만들고 나아가 침해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치유할 줄 아는 것이다. 흐물흐물 삶아진 수세미의 씨앗을 빼고 흔들어 씻어서 쓰기에 알맞도록 자른 뽀얀 속살을 볕에 말리며, 일기 같은 시를 적으며, 자신의 뒤엉킨 속을 설거지하는 것이다. 수세미속처럼 얽히는 인생사, 건전하고 지혜로운 마음 설거지를 생각하게 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 / 150자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비밀번호를 8자 이상 20자 이하로 입력하시고, 영문 문자와 숫자를 포함해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