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독섬’또는 ‘대섬’이며, 이 이름은 오랜 옛날부터 불러온 우리의 토박이 땅이름으로 독도는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영토임이 확실하다. 독도(獨島)라는 한자식 이름은 울릉군청에 보관돼 있는 광무 10년(1906) 음력 3월5일 울릉군수가 보고한 보고서에 ‘本郡所屬독도(獨島)’라는 내용이 있다. 1883년 이후 돌로 된 섬이라는 뜻의 ‘독섬’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이것을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돌’의 의미를 차용해서 석도(石島)라고 하였다가 나중에는 발음을 따서 독도로 불렀다.
그런데 돌을 ‘독’이라고 하는 것은 전라도 사람들이다. 조선 정부는 1883년 울릉도와 독도를 개척하게 하였는데 이주민 16가구 54명을 모집하였다. 이때 대부분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전라도에서 간 사람들이 멀리 보이는 돌섬을 독섬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바위섬의 뜻을 갖고 있는 독섬이 전국적으로 30여개에 달하며 독섬께, 독섬배기 등 독섬이라는 단어를 달거나 독자를 단 땅이름은 2천여개나 발견되고 있다. 지금도 울릉도에서는 독도를 독섬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1696년 숙종실록은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일본 어민에게 “송도(松島)는 자산도(子山島, 독도)이며 우리나라 땅이다”라고 말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침범에 항의하였다고 진술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최근(2005년) 일본에서 새로이 발견된 사료인 「원록구병자년조선 주착안일권지각서(元祿九丙子年朝鮮 舟着岸一卷之覺書)」(1696년 안용복이 오키섬에 도착하였을 때 오키섬의 관리가 안용복을 조사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는 안용복이 울릉도(竹島, 다케시마)와 독도(松島, 마쓰시마)가 강원도 소속이라고 진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숙종실록』의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리앙쿠르암은 서양에 알려진 독도의 다른 명칭으로 1849년 프랑스의 선박 리앙크루호가 독도를 처음 발견한 뒤 배의 이름을 따 리앙크루암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미국은 독도, 다케시마(竹島)로 불리는 독도를 리앙쿠르 락(Liancourt Rocks)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중립식 표현은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일본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로, 일본이 독도 문제를 어떻게 준비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독도를 이서다케시마(石義죽도(竹島)), 혹은 다케시마(죽도(竹島))라고 하지만 죽도라는 말도 우리 독도의 옛 이름인 우산도(于山島)나 삼봉도(三峯島)와 뜻이 같다. 죽도는 대섬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산의 섬을 뜻하는 달섬(山島)이 변한 말을 일본인들이 한자로 옮긴 것이다. 또 ‘대’는 우리말에서 ‘山’의 옛말인 ‘닫(달)’이 변한 말로 보이며, 독도의 옛 이름인 우산이나 삼봉도도 모두 ‘산’이 들어간 땅이름이다.
1905년 2월 22일 당시, 시마네현 고시 제 40호에서 다케시마(竹島)에 대해서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시마[隱岐島]에서 서북으로 85해리 거리에 있는 섬을 다케시마[竹島]라고 칭하고 지금부터는 본현(本縣) 소속의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정한다고 했다. 일본은 이미 전부터 다케시마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독도를 의미하는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도 이에 대한 명칭을 분명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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