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보면 태평성대가 100년 이상 이어진 때가 없다. 한반도를 번쩍 들어 태평양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상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말똥게와 맹꽁이 울음소리에 군사 기지를 유보할 만큼 한가하고 사치스런 나라가 못 된다.
요즘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는 우리 역사에 박힌 유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해군기지는 주변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는 정치인들의 주장은 “명과의 관계를 대결 구도로 치닫게 한다”며 반발했던 300년 전 좌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한ㆍ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그들이다. 부국도, 강병도 다 싫다는 것이니 그들이 집권하면 대체 무엇으로 국가를 지키고 무엇으로 국민을 먹여 살리겠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 가 없다. 당시에도 사대부들은 평화를 유지하는 데 국방보다는 외교가 값싼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종이 신기전을 추진할 때 “명(明)과의 관계를 대결구도로 치닫게 한다”며 반대한 것도, 효종이 북벌(北伐)을 주장할 때 “그러다가 나라가 망하면 어찌 하겠느냐”고 치받은 것도 그들이었다.
강군(强軍)을 바탕으로 중립외교를 추진한 광해군을 내쫓을 때 내세운 첫 번째 이유가 “대국(大國)에 죄를 지었다”는 것이었다. 오늘로 말하면, 그들은 권력에 대항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착실히 챙긴 좌파였던 셈이다. 그들은 부국과 강병책을 왕권 강화를 위한 구실로밖에 보지 않았다. 오히려 부국강병을 포기하는 것으로 평화와 생존을 보장받으려 했다. 그러다가 왜란(倭亂)이 끝난 뒤 불과 38년 만에 호란(胡亂)의 참화를 당하고, 호란이 끝난 뒤 273년 만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그럼에도 오늘이 있게 된 것은 하늘이 도운 까닭”이라고 기록한 류성룡장군의 ‘징비록’은 조선의 생존을 기적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탄식이 절절하게 묻어있다.
중국 류츠구이 국가해양국장(장관급)은 이달 초 “국가 해양국이 권익 보호를 위해 정기 순찰 대상으로 설정한 해역에는 이어도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어도는 우리 국토 남단 미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 떨어진 해상암초로, 우리나라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해 있다. 중국이 이어도를 ‘쑤옌자오’라는 자기네식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이다.
중국은 작년부터는 최대 해양 감시선인 3000t급 하이젠(海艦)50호를 이어도 주변 해역에 보내 순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고위 당국자의 이번 발언은 한국관할 이어도 해역에 관해 중국이 분명한 목적을 갖고 단계적으로 움직여 왔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중대 계기다.
영토나 해양 주권을 둘러싼 나라 간 분쟁은 처음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의 한 두 마디 말로 시작되지만, 갈수록 벌언 강도와 빈도가 높아지고, 어느 순간 국가 차원의 개입으로 옮아 붙는다. 독도를 넘보는 일본의 야욕도 지난 60여년간 이런 단계를 밟아 왔다.
그래서 나라 땅이나 바다를 넘보는 주변 국가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함부로 선(線)을 넘지 못하도록 초기 단계에 확실한 수호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중국의 국력에 비해 턱없이 작은 나라들도 중국이 남사(南沙)군도 영유권 주장을 들고 나오자 강력한 영토 수호 의지를 분명히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 안보는 국정의 시작이다.
이 시작이 뒤틀리면 그 위에 놓인 정치ㆍ경제의 모든 것이 휘청거린다. 따라서 안보 의지가 없다는 것은 국정을 맡을 의지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해군을 해적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에 뒤이어 튀어나온 ‘안보(安保) 장사’라는 단어는 야권 인사들이 안보를 얼마만큼 값싸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13일 트위터에 조국서울대교수가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이어도로 선거용 안보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글을 올렸다. 하루 전인 12일엔 민주당 박영선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이 총선쟁점을 이명박 정권심판론에서 안보쪽으로 옮기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2050년까지 대양(大洋) 해군으로 해군력을 강화시킨다는 계획에 따라 올해 처음 항공모함을 남ㆍ동중국해에 실전 배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군력 증강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증강된 해군력을 바탕으로 중국이 2010년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분쟁에서 선보인 ‘완력 외교’를 언제 이어도 주변에서 다시 들고 나올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제주도해군기지는 주변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고? 중국과 관계를 구실로 국방포기하고 강군을 반대하는 일부 정당과 단체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배동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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