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가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아버지예~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예~ 그런데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 혼자 중얼거리는 ‘독백’이 압권이었다. 이 장면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태반이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되었는데, 그 담을 무너트린 것은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반동이라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문제가 다뤄져야 할 시점에 ‘국제시장’의 등장은 반동으로 보인다”라고 한 얼간이들의 비판 때문이었다. 아버지 세대에 대한 문제라면, 오늘 북조선 인민들이 꽃제비가 되어 시궁창을 뒤져서 밥통을 채워야 하는 그들 못지않게, 굶기를 밥 먹듯이 한 억겁의 세월을 청산하고 세계에서 10위권의 경제대국, 잘 사는 나라를 만든,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할 대상이다. 196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을 때, 한국의 1인당 GNP는 86 달러, 세계 124개 국가 중 끝으로 두 번째였으며, 총 외환은 240 0만 달러뿐이었다. 이 자본을 갖고 경제개발 한다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믿을 것은 대감뿐이라고,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을 찾아가서 몇 푼이라도 빌려(차관)오려고 하였으나, 케네디 대통령은 한마디에 ‘NO’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받고 있는 처지였다. 경제 원조를 받고 있는 나라에 덧붙여 또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는 처사다. 일언지하에 쫓겨나듯 백악관을 나선 박정희 대통령은 암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서러웠으면 눈물 때문에 선글라스를 끼지 못하였다니, 같은 거절이라도 가난한 사람이 당하는 것은 천대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절망적 상황에서 귀국한 대통령은 그 돌파구를 찾은 것이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들을 파송하는 정책이었다. 이 정책이 발아되기까지는 차관단의 노력도 컸지만 백영훈 박사(현 산업개발연구원장)의 에르랑겐대학 동기생들의 협력이 큰 역할을 하였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결정타를 쳤지만. 극중에는 함부론 탄광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광부ㆍ간호사들의 눈물겨운 회동과 “대통령 만세”를 연호하던 이들이 대통령을 붙들고 “우리를 놔두고 못가십니다” 면서 ‘눈물의 바다’를 이룬 그 날의 감격적인 장면이 클로즈업 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아쉬웠지만, 만약 그 장면이 화면에 등장하였다면 발악하는 좌파들이 무슨 난동을 일으켰을지 짐작이 간다. 제3국의 보증 없이는 차관이 불가능하다던 서독이 박 대통령의 방독 후, 광부와 간호사들의 임금을 1개월간 담보한다는 형식적 조건으로 1억 5000만 마르크(약 3천500만 달러)를 우리에게 제공하였으며,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광부와 간호사들은 1년에 5500만 달러를 한국에 송금하여 왔다. ‘덕수’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찾아갔던 월남(베트남)은 군인들과 기업인들의 전쟁터였다. 그러나 그 월남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재할 수 있었을까? 미국은 휴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미군을 월남으로 옮기려 하였다. 미군의 발목을 휴전선에 묶어둘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우리가 월남으로 가는 길 뿐이었다. 아까운 청춘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한국군의 염원이었던 국방 현대화를 월남전을 통하여 단축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제1차 오일쇼크를 극복할 수 있는 중동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월남전에 군대만 파병한 것이 아니라 150여개의 한국 기업들도 함께 진출하여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쟁쟁한 나라들과 경쟁하면서 국제경쟁력을 키웠다. 만약 우리가 월남전이라는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면 감히 중동이라는 먹잇감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월남전에서 터득한 전투력을 제외 하더라도 그들이 가져 온 각종 신형무기가 휴전선 장병들에게 공급됨으로써 대북억지력이 강화 되고, 군의 현대화를 앞당길 수 있었다. 월남에서 장병들과 기업들이 본국에 송금한 금액은 약 66억 달러, 당시는 달러가 우리 피보다 더 가치가 있었던 그러한 시기였다. 중동 진출의 성공은 기회라는 바탕 위에 지혜를 덧셈한 결과였으며 ‘해보자, 하면 된다’라는 신념의 결과였지만 우리는 이를 기적라고도 표현하였다. 세계 최초라는 수없는 신화를 만든 곳이 바로 중동 건설 현장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까지, 모래알을 반찬으로 대신하고, 밤과 낮을 뒤바꾸면서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인 곳이 중동이었다. 서독의 광부와 간호사들의 눈물 젖은 빵과 월남전에서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이 한강이 기적을 이루었다면,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서 이룬 신화는 중화학 공업의 발판이 되어 선진국 도약의 토대가 되었다. “아부지예~,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 힘든 세월을 보낸 이 아버지의 회한과 절규가 꼴통좌익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심판의 대상으로만 느껴지는가? 물에 빠진 놈 건져놓으니 짐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더니, 오늘 한국의 좌파들이 딱 그 꼴이다. 박영근 한동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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