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최근 총선에서 온갖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틀째 모스크바에서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반정부 시위자 수백명이 체포됐고 악화된 여론에 당황한 러시아 정부가 1만명 규모의 진압부대를 주요 도시에 배치했다.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통합 러시아당을 비판하고 나선 가운데, 푸틴 총리는 자신이 재선될 가능성이 높은 내년 3월 대선 이후 개각을 단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위자 500여명 체포…진압부대 배치 = 6일(현지시간) 수백명 규모의 시위대가 수도 모스크바의 트리움팔라야 광장 인근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푸틴은 사기꾼이고 도둑놈이다" "푸틴 없는 러시아를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이날 트리움팔라야 광장을 봉쇄하고 시위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시위자 300명가량을 체포했다.
경찰에 구금된 시위대 가운데는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인사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도 포함됐다. 또 야권 단체인 `다른 러시아`의 대표 에두아르트 리모노프와 인권단체 `메모리얼`의 올레그 올로프도 체포됐다.
푸틴의 고향인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해 약 200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도 유사한 시위로 25명이 체포됐다.
이날 총선 부정선거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인근 장소에서는 통합 러시아당을 지지하는 친정부 시위가 동시에 진행, 시위자 수천명이 크렘린궁 인근에 모여 "푸틴 승리" 등의 구호를 외쳤다.
모스크바 법원은 전날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러시아의 유명한 인터넷 논객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해 15일 구류형을 선고했다. 나발리는 경찰 명령 불복종 혐의를 받았다.
한편 내무부는 모스크바를 포함한 러시아 전역의 질서 유지를 위해 1만1천500명 규모의 진압부대를 배치하고 경찰의 경계 태세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다수의 러시아 블로거들이 군인들을 태운 무장차량 행렬이 도심으로 향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푸틴 "내년 대선 이후 개각 단행" = 푸틴 총리는 내년 3월4일에 실시되는 대선 이후 개각을 단행하겠다고 6일 밝혔다.
그는 이날 통합 러시아당 회의에서 이같이 밝힌 뒤 지방 주지사들도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선에 성공하면 "예전의 푸틴"과 "새로운 푸틴" 중 어떤 모습으로 크렘린궁에 복귀할 것이냐는 한 당원의 질문에 푸틴은 현대화를 바라는 사회의 요구에 맞추겠다고 답변했다.
앞서 4일 실시된 총선에서 푸틴이 이끄는 통합 러시아당은 49%의 득표율로 전체 450개 국가두마(하원) 의석 가운데 238석을 차지, 힘겹게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푸틴을 대적할 만한 대선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아 현재로서는 내년 대선에서 푸틴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푸틴 총리는 실망스러운 총선 결과에 대해 "민심 이탈이 있었던 것 맞다. 하지만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을 가진 정치 세력(통합 러시아당)에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한 통합 러시아당의 부패문제에 대해서는 "특정 정당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 있는 곳에 언제나 따라붙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국제사회 비난 잇따라 = 유럽의회의 예지 부제크 의장은 러시아 총선 과정에서 발생한 사이버 공격, 독립 선거감시기구 골로스에 대한 위협,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위자 구금 등을 강하게 비난했다.
프랑스의 베르나르 발레로 외교부 대변인도 "시민들이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며 러시아 정부의 시위대 진압을 규탄했다.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총선 과정에서의 선거법 위반, 미디의 공정성 결여, 독립 선거감시기구 공격 등은 매우 우려되는 사태"라고 밝혔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역시 이번 러시아 총선이 "집권당에 편향됐고 선거 당국의 독립성이 결여됐으며 대부분의 언론 보도가 편향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도 5일 선거부정이 "매우 염려되는 문제"라고 말했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는 "미 백악관과 국무부 장관 등의 총선 관련 언급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비우호적인 공격들을 자제하라"고 요구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