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이 인(仁)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골라서 인한 곳에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이는 ‘이인’에 나오는 말이다. 이인(里仁)에서 이(里)를 동사로 봐 ‘인(仁)에 처하다’, ‘행동을 인(仁)에 맞게 하다’ 등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마을에 인후(仁厚)한 풍속이 있다’로 풀이한다.
마을에 인후한 풍속이 있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니, 그러한 곳을 가려서 살아야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자(仁者)가 산다면 어떤 마을이건 그 덕화(德化), 곧 사랑을 입어서 마을의 풍속이 아름답게 변화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가 사는 마을은 인리(仁里)일 수밖에 없고 마을의 풍속을 순화시키는 것 또한 지혜로움이 되는 것이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불리는 안동시, 이러한 안동시는 과연 이름처럼 덕화(德化)에 걸맞은 인후한 풍속이 있어 가려서 살 수 있는 곳인가?
더욱이,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곳으로서 한국미래 천년을 내다보며 안동인의 정신문화와 도덕적 가치를 온 국민이 공유하도록 승화시킬 수 있는 인자(仁者)가 사는 아름다운 인리(仁里)라 칭할 수 있는 곳인가?
최근 안동시는 ‘새천년 경북 신도청 시대 개막’과 더불어 전통과 예절이 살아 숨쉬는 ‘인보협동(隣保協同)’을 내세우고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이미지를 새삼 부각시키고자 막대한 예산을 홍보에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시민에게는 피부에 와 닫지 않는 남의 일일뿐이고 강 건너 불로 보일 뿐이다.
일에는 시작과 순서가 있다. 도무지 열리지 않는 난공불락 철옹의 성이라 할지라도 빗장을 열수 있는 하나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인자(仁者)가 될 것이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고된 수고를 일거에 멈추게 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인자가 있다면 철옹의 성문이 소리 없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시민에게 삶의 활력이 되고, 희망이 되고, 한국미래 천년의 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를 찾아야 한다. 그 열쇠는 무엇이겠는가?
특허청이 지난 2006년 7월 4일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브랜드를 등록ㆍ인정해 준 것은 21세기 안동만이 갖고 있는 숭고한 정신문화를 우리의 삶에 파급시켜 나가야 할 시대적인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본 기자는 지난 15일 16일 18일 세 차례 안동시청 민원실의 친절마인드 실태를 지적한 바 있다.
민원인을 보고 먼저 일어서서 인사하는 것은 예절의 기본이고, 예절은 곧 인(仁)을 실천하는 행위가 되며 민원실의 친절 수준은 지자체 친절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안동시청 공무원부터 변화하라는 의미를 담았는데, 그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인자의 본보기가 없으니 마땅히 그들만의 잘못은 아닐 게다.
더 일러 어쩌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다 예다 말하지만 옥이나 비단을 두고 말한 것이겠느냐. 음악이다 음악이다 말하지만 종이나 북을 두고 말한 것이겠느냐.”
이는 예와 악에서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예(禮)에서 형식으로 폐백이 되는 옥이나 비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정신, 즉 엄숙성이나 경건성이 있어야 하며 음악( 音樂)에서 그 악기인 종이나 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정신적 조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윗사람부터 먼저 변화하라! 그중에서도 가장 윗사람에서부터의 정신적 변화! 이것이 아직 열리지 않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천년의 문 거대빗장을 여는 인자(仁者)가 가져야 할 진정한 열쇠이며, ‘새천년 경북 신도청 시대 안동’에 주어진 정신문화적 가치 확산과 국민정신교육 도량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덕화(德化)의 시작과 정도(正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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