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1000조원에 이르는 ‘원전해체’ 시장을 두고 무한경쟁에 들어갔다. 이미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수명을 다한 원전을 해체 완료하거나 진행 중이다. 우리보다 원전해체기술에 있어서는 한 발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원자력시설 해체기술 종합 연구센터’를 앞세워 추격에 나설 태세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급변하고 있는 원자력에 대한 인식과 함께 ‘원전해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원전해체란?
‘원전해체’는 수명이 다한 원전을 안전하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철거해 부지 내 잔류 방사능을 최소화 시켜 부지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기술적ㆍ행정적 조치를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원자력시설 해체는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영구정지 및 해체준비로 5년이 소요된다.
2단계는 제염, 절단ㆍ철거, 폐기물처리 등의 작업이 10년간 진행된다.
마지막 3단계는 환경복원으로 5년이 소요돼 완전 해체까지는 총 20년이 걸린다. 초창기 최대 50년 이상 소요됐던 1세대 원전의 해체 기술보다 크게 앞당겨졌다.
원전 해체 방식은 대부분의 국가가 ‘즉시해체 (Immediate Dismantling)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원전부지의 선정이 어려워지고 있는 점이 고려됐다. 최근 프랑스의 원전사업자인 EDF의 경우 해체 부지에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 원자력 440기, 2055년까지 해체해야
지난 8월 말 기준 전 세계적으로 441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해체 완료된 원전도 미국 14기, 독일 3기, 일본 1기 등 총 18기에 이른다. 또 미국 32기, 영국 29기, 독일 27기, 프랑스 12기, 일본 9기 등 총 147기가 해체 대상인 ‘영구정지’된 상태다.
이 중 50기는 ‘즉시해체’ 방식으로 해체 진행 중이며 49기는 ‘지연해체’ 방식으로 해체되고 있다. 또 3기는 ‘완전밀봉(Entombment)’됐으며, 6기는 해체방식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2015년 78기를 시작으로 2025년 125기, 2030년 80기 등 2055년까지 모두 440기의 원전이 해체대상이다. 이에 따른 누적 해체 비용은 1000조원으로 천문학적인 규모로 급속하게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원자력 발전소 현황
국내 원자력발전소는 월성원전 5기를 비롯해 4개 부지에 23기가 가동 중이며 2024년까지 총 34기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해체 대상 1호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다.
고리원전 1호기는 2007년에 수명을 10년 연장함에 따라 2018년 수명이 끝난다. 1983년 가동을 시작해 2012년 수명이 완료된 월성 1호기도 현재 수명 연장 심의 중이다. 앞으로 2020년 월성 1호기, 2040년 고리 2호기ㆍ월성 2호기 등 2070년까지 해체 대상은 23기에 이른다. 이에 따른 해체 비용은 원전 1기당 6000여억 원이 소요되는 점을 가정하면 약 14조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국내 원전해체기술의 현주소
우리나라는 아직 원전해체 경험은 없지만 486기의 연구로 해체경험은 가지고 있다.
당시 ‘연구로 해체사업’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수원,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KNF) 등의 기관이 참여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연구용원자로 및 우라늄변환시설 해체 사업에 참여해 해체 설계, 방사선ㆍ능 측정, 해체 및 절단 작업 수행한 경험을 쌓았다.
한수원은 해체 비용 산정 및 해체전략 수립 등의 기술 개발을 수행했다.
또 한전KPS는 해체금속절단, KNF는 연구로 해체 폐기물 관리 경험 등을 각각 보유한 정도로 우리나라 원전해체산업기반은 아직 취약하다.
이에 따라 대형 원자력시설 해체에 요구되는 해체 관련 인력 및 연구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 ‘원전해체연구센터’로 원전해체기술 극복
원자력해체기술종합연구센터는 원전의 해체 기술 실증과 검증, 전문인력양성을 담당할 종합연구센터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시장이 확대되면서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인프라를 보완ㆍ구축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오는 2021년까지 총 1500억 원을 투자해 21개 핵심 기술을 확보한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현재 선진국 대비 70% 수준인 해체 기술을 10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게다가 국내 원전이 2023년부터 본격적 해체가 예상되는 만큼 기술 자립기반이 시급하다고 보고 서두르고 있다.
현재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 중이며 이달에 유치신청 공고를 낼 예정이다.
사업자 부지가 선정되면 내년부터 연구센터 설계 및 인허가 작업을 거쳐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될 계획이다.
유치참여는 경북을 비롯해 부산, 울산, 광주, 전남(영광) 등 8개 시ㆍ도가 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다.
◇각 지자체 ‘원전해체연구센터’유치 전쟁 돌입
원전해체기술의 구심축이 될 ‘원전해체연구센터’유치를 두고 각 지자체들의 물밑작업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1000조원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원전해체기술의 구심축이 될 ‘원전해체연구센터’유치가 성사될 경우 단번에 원전해체산업의 메카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치전은 경북을 비롯해 부산과 울산 등 원전 밀집 지역인 이들 3개 지자체가 가장 적극적이다. 여기에다 광주를 비롯해 전남, 강원, 전북 등도 지난 3월 유치의향서를 제출하고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경북은 국내 원전 설비 47%를 차지하는 최대 원전 집적지인데다 한수원 본사를 비롯해 방폐장,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 원전 해체 필수기관을 갖춘 점을 유치의 강점으로 앞세우고 있다. 또 총 사업비 13조 5000여억원을 투입하는 ‘동해안 원자력클러스터’라는 큰 그림 아래 원자력산업의 인구저밀도의 임해지역을 보유하고 있어 타 지역보다 우위에 있다는 논리다.
아울러 울진ㆍ영덕 원자력발전소 정부 지원 사업 타결로 신한울 원전 1~4호기 건설의 길을 터주는 등 높은 사회적 수용성도 강점으로 꼽고 있다. 게다가 한수원 본사 경주 이전, 한국전력기술 김천 이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양성자가속기 등 원전 관련 주요 기관이 경북도내에 있는 것도 유리한 국면이다.
특히 경북도가 추진 중인 ‘동해안 원자력클러스터’ 사업은 경주, 울진 등 경북 동해안을 연계해 제2원자력연구원, SMART 시범원자로, 원자력수소단지 등 연구실증과 인력양성을 위한 국제원자력기능인력교육원, 원전 마이스터고, 원자력전문대학원 등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또 원자력수출산업단지와 원자력산업진흥원 등 상업생산시설과 원자력병원, 원자력안전문화센터 등 안전문화 시설도 포함됐다.
이와 함께 포스텍과 동국대, 경북대 등에서 원자력과 관련된 우수한 연구와 인력 배출기반도 탄탄하다.
특히, 부지도 지난 2011년부터 미래원자력 시스템 개발을 위한 제4차 원자력진흥 종합계획을 확정하고 2018년까지 제2원자력연구원 종합 부지를 조성할 계획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경북과 유치경쟁을 펼칠 부산시는 조만간 진행될 고리 1호기 해체를 앞세워 사업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원전 밀집지역인 기장군에 방사선 의ㆍ과학 산업단지 등 관련 시설이 집적돼 있어 최적지란 설명이다.
연구센터 부지는 현재 기장군에 건설 중인 동남권 방사선 의ㆍ과학산업단지 내 부지 3만3000㎡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전밀도가 낮은 점이 아킬레스건이다. 특히, 원전해체는 사업 특성상 원전밀도는 높은 반면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이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장군은 초대형 관광ㆍ쇼핑단지가 들어서는 등 인구밀집지역인 것이 걸림돌로 작용되고 있다.
울산시는 반경 30㎞ 내에 고리원전 4기와 신고리원전 6기, 월성원전 6기 등 모두 16기의 원전이 들어선 밀집지역이란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유치 필승카드로 최근 울주군, 울산과학기술대(UNIST), 울산대, 울산테크노파크, 현대중공업 등 8개 산ㆍ학ㆍ연ㆍ관이 참여하는 ‘원전해체기술 개발 및 산업육성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한 바 있다. 이처럼 탄탄한 산업기반과 대학, 연구소 등을 앞세워 유치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산시와 같이 인구밀집지역이 약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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