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에 감기가 유행한다. 감기기운이 있다고 남의 약을 냉큼 집어 먹어서 내 감기가 떨어질까? 폐렴증세를 보이는 이웃의 처방전을 빌려 쓰면 내 감기가 뚝 그치고 건강을 빨리 되찾을 수 있을까?
2007년 이후 세계경제는 수요 부족형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현재 주요선진국 가운데 호황을 누리는 나라는 없다. 경기 회복조짐을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나라를 꼽으라면 미국과 영국 두 나라 정도 있다. 한동안 잘 나가던 독일까지 포함해 EU경제전체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의 GDP성장률은 2014년 2.2%에서 2015년 3%, 2016년 2.8%로 개선될 전망이다. 30여 년간 성장률 순위 세계 수위를 차지해온 중국마저 GDP가 2014년 7.3%에서 2015년 7%이하, 2016년 이후 성장률이 더 낮은 수준으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무디스 2015년 전망자료)
한국경제는 고도성장기에 일본모델 따라 하기에서 긍정적 효과를 얻었었다. 미국인들도 한때 “Japan No.1"이라고 치켜세울 만큼 언제 어디서나 믿을 만한 모델로 여겨졌다. 버블이 붕괴하자 이미지가 금세 부정적으로 변색해 일본이 선망에서 우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아베정권 등장이후 다시 일본 모델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아베의 “세 개의 화살”이 활시위를 떠난 후 과녁에 맞았다는 소식이 감감했다. 일본은 지난 20여 년간 장기불황에 시달려왔다. 복합적 요인들이 얽히고 설켜 결국 국가재정을 파탄시켰다. 연간 재정적자가 GDP의 7~8%에 달하고 공공부채 총액이 GDP의 240%을 넘어 선진국 최고, 최악의 수준에 이르렀다. 앞으로 언제 동경발(發) 쓰나미가 엄습할지 세계금융시장은 가시방석이다.
아베노믹스는 다양한 조치들을 포함하지만 주요 골자는 정부지출(재정적자) 확대와 금융완화(연간 국채구매 80조 엔으로 확대)를 병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시장반응은 시큰둥하다. 작년 4분기 1.6%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GDP가 올해 1분기 6.7%성장으로 돌아서자 반색하던 일본이 2분기 7.3%마이너스, 3분기 1.6%마이너스 성장으로 수렁에 빠져 울상이다. 이것을 4월의 소비세인상(5~8%)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동안 중앙은행이 돈주머니 끈을 더 풀고 환율을 조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약발이 나타나지 않는다. 부랴부랴 아베정권은 조기선거를 단행하고 예정했던 소비세 추가인상을 유야무야 덮고 넘어간다.
최근 한국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 IMF(국제통화기금)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로부터 GDP 증대효과가 높은 것으로 평가 받았다고 한다. 최경환 부총리로서는 힘이 실리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경환노믹스의 주요 맥점은 재정지출증대, 금리인하(가계 소비확대 유도), 기업사내 유보과세 등이다. 정부가 의도하는 소기의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라지만, 재정기반 침하(올해 세수부록 확대전망), 가계부채 확대(이미 1조원 초과), 기업재무구조 취약화, 금융기관 영업기반 위협(순이자마진축소, 자기자본비율 하락)둥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은 성장과정을 앞서 달린 나라로서 한국이 좋은 것은 취하고 미심쩍은 것은 버릴 기회를 주는 반면교사이다. 일본은 청결, 질서의식, 장인정신, 가업 잇기 등 배울만한 것이 많은 나라이다. 반면 역사의식 말고도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버블 만들기 이전과 이후 일련의 경제정책들이다. 특히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개입 관료주의, 부동산 버블 만들기, 경제 불황을 재정금융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구조적 개혁을 이루며 마냥 미루는 습성이다. 따라가다가 자칫 ‘잃어버린 20년’이 옮아온다.
감기에는 명의도 딱히 좋은 약도 따로 없다고 한다. 무리 없는 일상생활습관을 지키고 체질을 튼튼히 하는 것이 정답이란다. 경제의 건강법도 그러하다. 한국의 경제 살리기 정책이 아베노믹스를 닮은 구석이 많다. 대중매체들도 일본이 움직이자 우리도 따라 움직이자는 조급증을 발동했다. 중앙은행을 부추겨 금리인하를 유도했고, 그러고도 아직 배고파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내년에 닥쳐올 미국 금리인상 후폭풍에 대처할 무기를 섣불리 탕진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 장기 불황속에서 소규모개방형(국민총소득 대비 수출입비중 110% 초과) 한국경제가 3%내외 성장을 유지한다면 훌륭하게 잘 버티고 있는 셈이고, 과속은 무리하다. 이 사실에 인식의 공감대 확산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중국과 뉴질랜드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서명단계까지 이끌고 간 정부의 성과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대중매체가 쓰는 ‘영토 확장’이라는 표현은 상대국민의 혐한정서를 키우는 소아병적, 제국주의 어법이다. 정부의 위아래 그리고 언론안팎 모두 조급증과 조울증을 털어 버리고 중심을 잡아야 경제가 산다.
김병주(pjkim@sogang.ac.kr )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재단법인 나눔21 이사장
(전) 한국경제학회 회장
(전) 한국은행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
(전) 한국투자자보호재단 이사장, 소액서민금융재단 이사장
(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상대학장
김병주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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