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紋章)은 국가나 일정한 단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지(標識)로 그 당시의 사회·문화·정치적 상황은 물론 시대적 정신이 담겨져있다. 현대에도 건물, 간판, 상표, 수표, 공식서류 등 문장이 있는 것처럼, 문장(紋章)은 과거의 유물이나 회고의 대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살아서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상징이자 이념이다. 대한민국은 1963년 12월10일 규정에 따라 무궁화와 태극무늬로 구성된 문장(紋章)을 쓰고 있어 현재는 무궁화와 태극무늬를 어디서나 볼수 있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5개의 꽃잎 하나당 3개의 술이 놓여진 꽃의 문양, 이것이 바로 조선황실의 꽃 `오얏(李)`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태조실록(太祖實錄)에는 조선을 뿌리가 깊고 근본이 튼튼한 오얏나무로 표현했다. 황실 가문의 성(姓)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식물로, 궁궐이나 사대부 집 후원에 흔히 심는 조경 과실수임이 춘향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李)도령을 낳기 전 태몽도 오얏나무 꽃이라 하니 그 당시 가장 좋은 태몽으로 봤을 것이다. 오얏꽃이 무늬로 제작돼 사용된 것은 대한제국 이전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얏꽃무늬 관련 유물은 1885년에 경성전환국에서 찍어낸 화폐이다. 1900년에 고종은 조서를 내려 훈장의 이름과 뜻을 밝히는 훈장조례를 반포해 이화대훈장(李花大勳章)이 등장한다. 또 덕수궁 석조전의 페디먼트,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의 용마루와 실내전등, 희정당(熙政堂)의 현관, 낙선재(樂善齋) 뒤뜰의 돌의자 등 건축물에서도 오얏꽃무늬를 볼 수 있다. 황실에서 사용하였던 가구들과 은합, 수저와 같은 기구들에도 오얏꽃무늬가 음각돼 있고 일본,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수입한 대량 생산된 산업자기들에도 오얏꽃무늬가 찍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전의 왕실 문양으로 사용됐던 용이나 모란 등 중국의 영향을 받은 문장과는 달리, 오얏꽃무늬는 이씨(李氏) 왕가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소재다. 자주적 오얏문장 사용으로 독립국임을 알리고 외국의 내정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대한제국 시대적 배경을 통해 엿볼수 있다. 이처럼 황실문장 오얏꽃무늬는 조선 왕조를 직접적, 시각적으로 나타냄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고 대한제국의 단결을 유도하는 매개체이자 민족의 정체성이다. 그런 오얏꽃은 무슨 연고인지 잊혀져 갔다. 대한제국의 국기 태극기는 대한민국까지 계승됐지만 대한제국의 꽃 오얏꽃은 무궁화로 바뀌었다. 이름조차 수난을 당하고 있다. 오얏은 고어가 돼 현재는 자두라는 말을 쓴다. 조선 500년 역사와 대한제국의 권위이자 상징인 꽃이 국가문양에서 사라지고 왜 고어가 됐을까? 앞서 말했듯 오얏(李)이 조선황실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는 황실 가문의 성(姓)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도선국사는 도선비기(道詵秘記)에 500년 뒤 오얏 성씨(李)를 가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을 두려워한 왕은 한양에 오얏나무를 심었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베어버림을 반복함으로써 왕기(王氣)를 다스렸다고 한다. 그러한 핍박에도 그 후 나타난 500년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시대가 열렸다. 이성계는 환조 이자춘과 의혜왕후 최씨의 적자로 태어났는데 태어나기전 태몽이 범상치 않았다. 꿈 속 하늘에서 오색 구름을 타고 선녀가 내려와 이자춘에게 절하고 `천계에서 그대에게 내리는 것이니, 장차 이것을 동쪽 나라를 측량할 때 쓰라`며 침척(바느질에 사용하는 자)을 꺼내 바쳤다고 한다. 이(李)는 오얏나무라는 뜻도 있지만, 심부름꾼·사자 라는 뜻도 있다. 또 이(李)자는 나무목과 아들자의 조합으로 동쪽의 밝은 해를 상징한다고 한다. 조선 500년 역사와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상징했던 이(李)는 어느샌가 국화로 상실, 이름마저 잃어버리며 일본침략 당시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다시금 부상하기 시작했다. 나라를 빼앗긴 황실에 대한 불신과 서러움 때문일까. 무궁화는 어느새 나라꽃으로 자리잡았지만 이것 역시 일제의 압제로 수난당한다. 8월8일은 `무궁화의 날`이다. 지난 2007년 어린이 1만명이 뜻을 모아 국회와 공동 주관으로 울릉도에서 선포식했다. 숫자 8을 옆으로 누이면 무한대 `∞`로, 끝이 없다는 무궁(無窮)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인 점과 무궁화가 만발한 한여름 시즌을 고려해 결정한 것이다. 피었다 지어도 또다시 피어나는 무궁화, 끝이 없는 영원성은 외세의 압제가운데 끊임없는 생명을 의미한다. 오얏과 무궁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정신이 살아숨쉬는 상징이며 앞으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상징이다. 현재 달력은 물론 일반인도 무궁화의 날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에 일본꽃 벚꽃축제는 많지만, 정작 나라꽃인 무궁화 축제가 드문게 아쉽다.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 외세침략이 가장 잦았던 반도.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이어올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자존심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신의 상징 중 하나가 오얏(李)과 무궁화(無窮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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