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포항에서의 3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던 황선홍 감독을 만났다.
전년도에 FA컵을 들어 올리면서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덜었던 황 감독은 2013년의 포부를 원대하게 세웠다.
목표는 타이틀이 아니라 `좋은 축구`를 구사하는 `축구를 잘하는 팀`이었다.
황선홍 감독은 "선수들 앞에서 아예 못을 박았다. 선제골을 먹더라도 우리의 축구를 하자고. 한 경기 지더라도 포항만의 플레이는 흔들리지 말자고 강조했다. 나도 잘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지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졌고 그러면 밸런스가 무너졌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선수들과 아예 약속을 했다. 내가 먼저 말했으니 무조건 지켜야한다"며 `좋은 축구`를 위한 배수진을 설명했다.
그 다짐과 함께 2013년 포항은 유례가 없었던 시즌 더블을 달성했다. FA컵 2연패와 정규리그 트로피를 모두 거머쥐었다.
외국인 선수 단 1명도 없이, 포항은 포항만의 스타일로 대한민국 프로축구계를 평정했다. 그리고 2014년, 그 목표는 연장선 위에 있다.
포항은 올 시즌 역시 정규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ACL도 8강에 올랐다.
비록 지난 16일 FC서울과의 FA컵 16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대회 3연패 꿈은 좌절됐으나 여전히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서울전 패배 이후 첫 경기였던 20일 부산과의 정규리그 16라운드에 앞서 만난 황선홍 감독은 "오늘 경기를 어떻게 하는지 봐야한다"며 웃었다. 선수들 스스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결국은 얼마나 꾸준한 경기력을 발휘하느냐가 강팀의 조건"이라면서 "패하고 난 다음 경기에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누누이 말하는 "우리는 시즌 전체를 바라보고 살아야하는 사람이다. 한 경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과 맞물리는 견해였다.
또한 `선제골을 내줘도 자신들의 축구를 하자`던 앞선 다짐과도 맥을 같이 한다. 작게는 경기 내에서, 크게는 시즌 전체의 이런저런 상황들에 휩쓸리지 말고 포항다운 축구를 구사하자는 뜻이다.
이런 기조 속에서 포항이라는 팀은 점점 강호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명주라는 에이스가 팀을 떠났으나 포항의 스타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빈자리를 문창진, 박선주, 이광혁, 김준수 등 20대 초반 신예들이 메우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나 가능성이 보인다. 황선홍 감독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선수들이 잘 성장해야 우리 팀이 유지될 수 있다"면서 재정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의 고육책이라는 뜻을 전했으나, 결국 이것이 강팀의 뿌리다.
포항은 20일 부산전에서 2-0 완승을 거뒀다. 후반 13분 강수일이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 27분, 고무열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신광훈이 넣으면서 추가골을 만들었다. FA컵 아픔 뒤에도 포항은 흔들림 없었다. 게다가 부산전 징크스도 깼다. 포항은 최근 홈에서 열린 부산전에서 2무2패로 부진했다.
경기를 앞두고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부산전을 했을 뿐이다. 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던 황선홍 감독의 당당함은 멋지게 현실이 됐다.
적지 않은 팀들이 한 경기 한 경기에 연연할 수밖에 없고 승리에 집착해 내용을 버리고 있으나 포항은 `시즌` 전체를 보고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황선홍의 포항은 점점 `좋은 축구`를 구사하는 `축구를 잘하는 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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