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운동의 대부, 한국 천주교 예수회 정일우 신부가(미국명 John V. Daily·세례명 요한)이 2일 저녁 7시40분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79세. 1935년 11월21일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난 정 신부는 1960년 미국에서 예수회 신부가 되자마자 한국으로 건너왔다.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고인은 3년간 서강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을 공부한 뒤 사제 서품을 받아 1966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 평생을 한국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다. 청계촌 판자촌 주민과 정부의 개발정책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양평동·목동·상계동 등지의 철거민들과 함께 먹고 자며 살았다. 이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영성 지도신부이기도 했던 그는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며 천진무구한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았다. "살아있는 예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람들을 굳이 교육하지 않았지만 그를 만난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돼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사회구조 개선 활동을 했다. 이러한 공로로 늘 그의 곁을 지켜 온 고(故)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 1986년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을 받기도 했다. 도시빈민 운동에서 물러나서는 1994년 솔뫼농장이 있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로 내려가 2002년 초까지 9년 가까운 세월을 가난한 농민과 함께 했다. 검은 고무신에 츄리닝 차림으로 직접 농사를 짓고 농민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면서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품을 들고 성당들을 다니며 손수 판매하기도 했다. 70세 생일을 앞두고 63일간 지속된 단식으로 몸이 상한 그는 서울 평창동 성이냐시오집에서 요양해 왔다. 고인의 빈소는 여의도 성모병원 영안실 1호에 마련됐다. 장례미사는 4일 오전8시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거행된다. 장지는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다. 02-3779-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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