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 본격화되며 대구·경북 지역, 특히 지난 3월 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북동부 5개 시·군(의성, 청송, 영양, 안동, 영덕)이 다시금 재난의 위협 앞에 서 있다. 기후위기 시대, 산불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재해의 시작이었다. 불에 탄 산림은 빗물을 머금지 못한 채 토사를 고스란히 마을로 흘려보낸다. 급경사 능선과 민가를 끼고 조성된 산간 마을은 산사태에 가장 취약한 구조를 지닌 만큼, 예고된 위험 앞에 근본적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다행히 산사태 피해는 아직 대규모로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지반이 약화된 채 장맛비를 머금은 산림은 언제든지 붕괴할 수 있으며, 주민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 등은 응급복구와 위험목 제거, 옹벽 설치, 낙석방지망 등 다양한 사전 조치를 시행하고 있고, 산림청과 경북도 역시 비상 점검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만으로는 광범위한 피해지역 전체를 감당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실제로 응급조치가 이뤄진 곳조차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지형상 옹벽 설치가 불가능하거나 사유지 동의가 확보되지 않아 복구가 지연되는 사례도 있다. 일부 주민들은 자비로 옹벽을 쌓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장사 기반을 잃은 상인들 역시 정부나 지자체의 실질적 지원 부족을 체감하고 있다. "땜질식 대응"이라는 주민들의 비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이에 따라, 단기적 응급조치에서 벗어나 중장기적 산사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산불 피해지역을 중심으로 산사태 조기 예측 시스템을 전국 수준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드론·위성영상·지반함수량 센서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실시간 감시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둘째, 주민 주도의 대피훈련과 재난 대응 역량 강화를 제도화해야 한다. 기상특보와 동시에 작동하는 재난 알림 시스템, 마을회관·학교 등 대피소 정비, 노약자 지원 체계 구축은 기본이다. 셋째, 중앙정부는 산사태 전용 예산인 ‘특별교부세’ 확대와 기술 인력 파견 등 직접 지원에 나서야 한다. 산불 복구와 산사태 대응을 위한 산림청과 국토부, 지자체와의 협업도 강화해야 한다.이번 장맛비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산불피해지 지반은 쉽게 비를 머금고 침식될 우려가 높다. 산사태는 ‘보이지 않는 재해’다. 잠복기 동안은 조용하지만, 한순간 생명과 재산 등 모든 것을 쓸어간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뿐이다. 대구·경북이 또 한 번의 재난 앞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역과 중앙이 함께 재난의 경계를 낮추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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