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는 ‘공정한 선거’다. 그 선거를 총괄·관리하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스스로 그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최근 불거진 ‘회송용 봉투 내 기표지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선관위의 무책임한 대응과 책임 회피, 그리고 국민 탓으로 돌리려 한 태도가 낳은 민의 왜곡이다. 선관위 과실로 인해 2명의 유권자가 권익을 침해 받았다. 봉투 속 1표의 민의는 무시됐고, 또 다른 유권자는 억울한 누명까지 써야 했다. 경기 용인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봉투 안에 기표된 투표지를 발견하고 신고했다. 그러나 이 성실한 신고는 ‘자작극’이라는 의혹으로 왜곡됐다. 중앙선관위는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혼란을 유도한 자작극으로 의심된다”며 해당 유권자를 경찰에 고발했다. 정작 수사 결과는 어떠했나. 투표사무원의 실수와 또 다른 유권자의 착오가 겹쳐 벌어진 단순한 사고였다. 유권자에게는 죄가 없었다. 명예만 실추되었을 뿐이다.선관위는 이제라도 이 사건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실수한 것은 선관위 직원이었고, 오히려 문제를 바로잡으려 한 것은 평범한 국민이었다. 그런데도 진상조사도 없이 `자작극` 운운하며 수사 의뢰까지 한 처사는 독선이고 오만이다. 유권자의 투표권을 위협하고 명예까지 훼손한 이 사안은 단순 해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선거 과정에서의 다수의 부정 의혹과 불투명한 해명이 겹치면서 선관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일련번호가 연속된 3천여 장의 투표지가 특정 후보만을 찍은 채 발견, 수 시간 동안 투표장 밖으로 반출된 투표지, 유권자보다 많은 투표 용지 등은 명백히 조사 대상이다. 국제선거감시단이 한국 선거의 공정성에 대해 조사 결과를 오는 26일 워싱턴에서 발표하겠다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선관위에 대한 국내외의 의심이 깊다는 방증이다.
선거 부정은 곧 민주주의 파괴다. 국민 한 명의 투표권도 가볍게 여겨선 안 되며, 단 한 표의 왜곡도 묵인돼선 안 된다. 선관위는 즉시 관련 의혹 전반에 대해 재조사에 나서야 하며, 필요하다면 검찰과 경찰에 정식 수사를 의뢰해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또한, 이번 사건으로 명예를 훼손당한 유권자에게 선관위는 공개 사과와 함께 배상 등 법적 책임까지 고려해야 한다. 공권력이 자행한 명백한 불법행위였기 때문이다.
선거철만 되면 대량 휴가 신청자가 나온다는 의혹도 규명돼야 한다. 이번 사례처럼 전문 분야인 선거 관리가 초보 수준으로 관리되는 것을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은 더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 선관위가 잊지말아야 할 것은 ‘관리의 편의’가 아닌 ‘국민의 신뢰’다. 공정하지 못한 선거는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그 결과로 선출된 권력은 정당성을 잃는다. 선관위는 더 이상 애먼 국민을 탓하지 말고, 부실한 선거시스템과 오만한 태도를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선거 공정성 회복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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