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다만, 내란 또는 외환의 죄는 예외로 한다.” 헌법 제84조는 단 한 문장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불소추특권은 ‘면책’인가, ‘유예’인가?특히,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기소될 수 없다는 뜻이다. 수사는 가능하다는 해석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수사도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검찰이 대통령을 수사할 수는 있어도, 기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사의 동력은 떨어진다.그러나, 이 특권은 영구적인 면책이 아니다. ‘재직 중’이라는 명확한 조건이 붙는다.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며, 필요하다면 형사책임도 져야 한다. 과거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 법정에 선 이유도 이 조항 때문이다.헌법은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원활히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일정한 법적 방패를 제공한다. 외교, 안보, 정책 결정 등 국가의 중대 사안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임기 중 계속해서 형사절차에 시달리는 것은 국정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특권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권력의 사적 남용이나 비위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그 책임을 ‘재직 중’이라는 이유로 유예하는 것이 공정한가? 국민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고, 대통령도 더 이상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물론 헌법 제84조는 내란과 외환의 죄는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존립과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는 대통령이라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강한 헌법적 메시지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범죄에 대해 면책에 가까운 지위가 보장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한편, 정치적 책임은 선거로, 형사책임은 법정으로 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대통령은 재임 중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국회의 탄핵제도는 하나의 견제 장치지만, 실효성에 대한 회의도 있다.최근의 정치 현실 속에서도 이 조항은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어떤 의혹이 있든 대통령은 재직 중 소추되지 않기에, 사실상 임기 중에는 정치적 대응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여론이 양극화되기도 하고, 권력의 책임성에 공백이 생기기도 한다.또한, 불소추특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특혜가 아니다.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이다. 그러나 그 특권이 남용된다면, 오히려 국민의 불신을 키우는 결과가 된다. 고위직일수록 더 엄격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헌법 제84조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반드시 필요한 장치일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국민 의식이 성숙해질수록, 이 조항을 둘러싼 재해석과 보완 논의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불소추는 면책이 아니다. 유예된 책임일 뿐이다.이어, 국민은 기억한다. 법 위의 대통령은 없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을 때보다, 물러난 후 더 무거운 책임이 시작된다는 것을.지금 필요한 것은 조문의 문구가 아니라, 그 이면의 정신을 되새기는 일이다. 불소추라는 방패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공적 책임 앞에 정면으로 마주 서야 한다. 진정한 국정 책임이란, 법적 예외가 아닌 도덕적 엄격함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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