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신일권기자]썸을 탈 때 너무 들이대면 부담스럽고, 너무 멀어지면 서운해진다. 밀고 당기는 타이밍이 중요한 건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배터리 내부 소재 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기술로 차세대 배터리 수명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는 성능의 한계에 다다랐고, 내부의 액체 전해질은 누액과 폭발 위험까지 안고 있다. 최근 전고체배터리(All-Solid-State Battery, ASSB)가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해질을 고체로 바꾸면 수명은 늘고 화재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는데, 특히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은 액체처럼 전기가 잘 통하면서 안전해 차세대 배터리 핵심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고용량 음극 소재인 실리콘이다. 기존의 음극 소재인 흑연보다 10배 이상 많은 전기를 저장할 수 있다. 그런데 충전 과정에서 부피가 최대 4배까지 팽창해 딱딱한 고체전해질은 영구 변형되고, 방전 과정에서 부피가 수축하며 실리콘과 고체전해질은 멀어지게 된다. 연구팀은 실리콘의 장점은 살리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밀당 전략’을 사용했다. 부피 팽창이 적고 유연한 알루미늄을 실리콘과 섞어 만든 ‘알루미늄-실리콘(Al–Si)’ 합금은 충·방전 초기에는 다소 팽창하지만, 이후 부피 변화가 거의 없어 전해질을 밀어내거나 당기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어, 여기에 알루미늄-실리콘의 팽창에 따라 유연하게 늘었다가 줄어드는 ‘탄성 회복형 고체전해질(LBHI)’을 더해 알루미늄-실리콘과 전해질이 항상 잘 붙어있도록 했다. 이처럼 `거리 조절`에 성공한 연구팀의 고용량(6 mAh·cm-2) 전고체배터리는 높은 율속 조건(1 C-rate)에서도 300회 충·방전 후 초기 용량의 81.6%, 500회 후에도 70% 이상의 용량을 유지해 실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또한, 연구팀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3차원 X선 촬영, 실시간 내부 압력 측정 및 디지털 트윈3) 기반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배터리의 내부 구조 변화를 정밀하게 분석해 과학적 근거도 확보했다. 이 연구는 단순한 소재 개발을 넘어 실리콘 음극의 구조·기계·전기화학적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박수진 교수는 “차세대 배터리에서 고용량 소재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성과”라며 “전기차는 물론 대용량 저장장치(ESS), 스마트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어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를 크게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한편,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박수진 교수, 박사과정 송영진 씨, 조성진 박사 연구팀, 연세대 배터리공학과 이용민 교수팀이 함께 진행한 이 연구는 최근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온라인판에 게재됐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지역혁신 메가프로젝트 사업과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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