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신일권기자] 우리가 낯선 도시에서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면 길을 잃기 쉬운 것처럼, 화학 반응에서도 분자들이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이인수 교수, Amit Kumar(아밋 쿠마) 연구교수, 박사과정 Sampathkumar Jeevanandham(삼파스쿠마르 지바난담) 씨 연구팀이 분자들을 정확한 경로로 안내하는 ‘분자 내비게이션’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저명한 과학 학술지인 ‘ACS 나노(ACS Nano)’ 지난 2월호에 추가 표지(Supplementary Cover) 논문으로 게재됐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 때 다양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때 분자들이 촉매에 무작위로 붙으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반응이 진행되면 원치 않는 물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2D 실리카(silica) 나노 반응기 내에 구리(Cu)와 백금(Pt) 금속 나노결정을 포함하는 2D 하이브리드 촉매를 제조하고, 이를 활용하여 `리간드-다공성 쉘 협력 효과(Ligand-Porous Shell Cooperativity)‘라는 개념을 적용한 선택적 화학 반응을 구현했다. 이 촉매는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처럼 분자들에게 정확한 경로를 안내한다. ‘유기 리간드’는 반응에 참여하는 분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며, ‘실리카 쉘(shell)’은 물리적인 차선을 만들어 분자가 특정 경로로 이동하도록 제한한다. 이 `분자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의약품과 플라스틱, 화장품 등의 제조에 필수적인 화학 반응들에서 놀라운 정확도를 보였다. 알카인(alkyne)과 불포화 에스터(esther), 알데하이드(aldehyde), 니트로아렌(nitroarene)의 수소화(수소를 첨가하는) 반응에서 분자들은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원하는 목적지에 정확히 도달했다. 또한, 연구팀이 개발한 촉매는 효율성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까지 갖췄다. 기존 촉매들은 여러 번 사용하면 성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연구팀의 촉매는 반복적으로 사용해도 성능을 유지했으며, 비정질 실리카와 같은 저비용 재료로도 촉매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인수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촉매 설계의 효율성, 다목적성, 지속 가능성을 모두 아우르는 차세대 촉매 기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라며, "플라스틱, 의약품, 화장품, 전자 소재 등 다양한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화합물을 생산할 때 불필요한 부반응을 줄이고, 환경 오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리더연구자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