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조영삼기자]조선 조정이 울릉도를 관리한 수토 정책을 밝혀주는 `항길고택일기`가 첫 공개됐다.   이번 공개는 지난 19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독도자료 디지털 플랫폼인 독도아카이브에서 선보였다.   20일 재단 관계자는 "항길고택일기는 울릉도 수토 정책과 관련된 현장감 넘치는 기록물로서 앞으로 독도 영유권의 논거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이 일기의 울릉도 수토 기록들은 다른 관찬‧사찬 기록에 보이지 않는 내용들이 대부분 수록돼 있어 역사 및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수토의 재원으로 쓰일 수토료(搜討料) 문제나 울릉도를 오가는 선박, 삼척영장의 부임 기록 및 수토 기록과 함께 수토선박의 출발지가 삼척‧평해‧울진으로 다양했다는 점이 상세히 확인된다. 또 정기적으로 실시된 수토 외에도 불시에 점검한 사례 등도 기록돼 있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수토(搜討)는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기 위해 조사하거나 살펴 보는 것이며, 삼척영장은 군사 훈련, 치안 유지, 해안 방어 등의 임무와 함께 울릉도 수토의 책임자였다.   이 기록을 통해 울릉도 수토제의 다양한 면모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수토제의 본거지인 삼척의 현장 기록이라는 점에서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학계에서 받고 있다.재딘은 "17세기 말 시작된 수토제는 울릉도에 현재 군수 격인 도장(島長)을 두는 1895년까지, 200년간 운영된 울릉도‧독도 관리정책"이라며 "수토관들은 3년마다 한 차례씩 울릉도‧독도를 직접 방문해 현지 실태를 조사하고 조정에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18~19세기를 거치면서 2년마다 시행되는 등 수토의 시행 빈도가 늘었으나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인 수토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다.    수토제는 이후 조정 관리가 파견돼 거주하는 도장제를 거쳐서 1900년 울릉군(鬱陵郡)의 설치(칙령 41호)로 이어졌다.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120여 년의 기록을 담은 항길고택일기는 강릉 김씨의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을 시조로 하는 명가에서 기록됐다.   이 가문은 강릉‧삼척‧울진‧평해 일대에 뿌리를 내렸다. 일기를 소장했던 감찰공파는 김자현(金子鉉, 1404~1441)을 파조(波祖)로, 후손들은 삼척부 용정리(현 동해시)에 터전을 마련하고 항길장(恒吉庄) 혹은 항길댁(恒吉宅)이라고 했다.    항길댁은 1936년 이 지역에 들어선 북삼화학공장에 매입되면서 철거되고 현재는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어나 지금까지 항길고택(恒吉古宅)이라고 불리고 있다.   재단은 "항길댁에서 대대로 작성해 온 `항길고택일기`는 특정한 책의 제목이 아니라, 일기 형태로 모두 12책으로 구성됐다"고 했다.    책마다 표지에 면속재광음(免俗齋光陰), 속재거저(俗齋居諸), 구봉광음(九峯光陰), 동우광음(東愚光陰) 등의 제목이 확인된다.    일기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책력(冊曆)의 상단이나 하단 여백 부분에 해당 일자에 벌어진 일들을 메모 형태로 적어둔 기록물이다. 재단 박지향 이사장은 “이 일기는 수토제를 통해 울릉도‧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직접 관리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로, 앞으로 각종 연구에 심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한편 이번 공개는 동북아역사재단이 2018년 강릉김씨 감찰 공파로부터 483책의 고서와 1,070여 점의 고문서를 기증받은 지 7년 만이다.    현재 총 12책으로 이뤄진 일기는 재단 동북아역사넷 ‘사료라이브러리’ 또는 독도아카이브 홈페이지 ‘역사자료’ 메뉴를 클릭해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재단 독도연구소는 독도아카이브를 통해 기증된 많은 고서, 고문서 내용과 이미지 파일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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