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민영일기자]12·3 비상계엄 직후 수세에 몰렸던 국민의힘이 개헌론에 힘을 싣는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통령제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데 있지만 정국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려는 전략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시각이다.여당은 대통령제를 대신할 방안으로 내각제, 양원제 등을 내세우고 비명(이재명)계 역시 힘을 싣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실현 가능성엔 의문부호가 달린다.9일 정치권에 따르면 개헌 논의는 비상계엄 선포 후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 방안 중 하나로 처음 거론됐다. 계엄 선포 이틀 후인 지난해 12월 5일 국민의힘 김재섭·김상욱·김소희·김예지·우재준 의원 등 소장파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 임기를 줄이면서 4년 중임제를 시행하자는 내용의 개헌안을 제안했다.비상계엄의 부적절성에 공감한 오세훈 서울시장·홍준표 대구시장·김태흠 충남도지사·이철우 경북지사 등 여권 광역단체장들도 개헌의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국민의힘 내 친윤(친윤석열)계 역시 윤 대통령의 즉각 하야나 탄핵을 주장하는 야당과 친한(한동훈)계에 대항하는 논리로 임기 단축 개헌을 내세웠다. 윤상현 의원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다음 대통령도 똑같은 비극을 회피할 수 없다"며 임기 단축 개헌을 야당에 요청하기도 했다.이후 국민의힘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체제가 자리 잡고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개헌론에 고삐를 바짝 조였다.올해 들어 국민의힘은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면서 개헌론을 더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지난 6일에는 당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6선으로 국회 최다선인 주호영 의원을 임명해 당 자체 개헌안 마련에 돌입했다.국민의힘이 개헌을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현행 헌법 체제에서 윤 대통령을 비롯해 대부분 대통령들이 옥고를 치르는 등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는 데서 출발한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40년 된 87년 체제가 바뀔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바꿔야 더 이상 불행한 사태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수세에 몰린 탄핵 정국을 돌파하고 차기 대권주자로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대표를 압박하기 위해 국민의힘이 개헌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사실상 개헌의 키를 쥐고 있는 이 대표가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만큼 이를 고리로 대야 공세 수위를 높여 정국 주도권을 가져오겠단 것이다.현재까지 거론된 개헌 방향엔 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대통령의 책임성 강화 방안과 함께 의회의 권한 남용을 막는 양원제 도입이 있다.4년 중임제는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전환해 대통령 당선 이후 4년 뒤 중간선거를 열어 중임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의원내각제는 의회의 다수 의석 정당 또는 그 연합이 행정부의 구성권을 가지며 의회에 책임을 지는 정치 제도다.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를 절충한 이원집정부제는 내란·전쟁 등의 비상시에는 대통령이 행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지만 평상시에는 총리가 내정에 관한 행정권을 행사하며 대통령은 외교 국방 등의 권한만을 가지는 방식이다.국민의힘은 여권은 물론 야권과 정치 원로들 사이에서도 개헌론이 나온다는 점에서 더욱 자신감을 얻는 모습이다.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 대표들로 구성된 `나라를 사랑하는 원로 모임`도 권력분산·견제 장치를 두고 승자독식 구조를 깨는 개헌을 제언했다.이재명 대표가 침묵하는 사이 비명계를 중심으로도 개헌론에 적극적이다. 야권 잠룡으로 꼽히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탄핵의 종착지는 이 땅에 그런 내란과 계엄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개헌이 돼야 한다"고 했다. 친노무현계인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 또한 "대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이) 개헌을 능동적으로 밀고 가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다만 이번 조기 대선 국면에서 개헌이 탄력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집권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친명계가 개헌에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최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도 개헌 관련 질문에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는 게 제 생각"이라고 답한 뒤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