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 3명을 배출한 흔치 않은 마을이 있다. 오랜 역사 속에 선비정신과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곳 바로 포항시 기계면이다.
예부터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이 지역에서 기계 삼태사는 윤태사, 유태사, 신태사이다.
태사(太師)는 고려시대 삼사(三師)의 하나로 정일품의 벼슬을 말하는데 기계면은 대체 이 세명과 어떠한 사연이 있을까?
▲유태사= 유삼재는 기계 유씨의 시조로 신라시대에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등인 아찬 벼슬을 지냈다. 유삼재의 묘소는 기계면 미현리에 있다.
신라가 쇠하고 그의 후손 유의신이 고려에 불복하자 태조 왕건이 그를 기계 호장으로 삼았다. 이후 그 후손들은 기계를 본관으로 삼았다.
선조의 덕을 추모하고 후손의 번창함을 기원하는 기계 유씨의 성역으로는 부운재가 있다.
부운재는 숙종 15년(1689) 유하겸 경주부윤이 관내 연세 높은 어르신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계 유씨 시조묘를 찾아 그 다음해에 표석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후손들이 크고 작은 증축을 이어왔다.
또 이곳을 찾는 이들이 덕을 쌓고 효를 실행하는 계기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탁기가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면서 세운 신도비도 있다.
신도비란 높은 관직을 지낸 사람의 공적을 흠모하는 뜻을 담아 무덤 근처나 큰 길가에 세우는 비석을 말한다.
기계 유씨의 대표적 인물은 사육신의 한사람인 유응부, 영조 때 노론의 원로로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 개화의 선구자 유길준 등이 있다.
▲신태사= 신태사가 위치한 윗마을은 월성박씨(月城朴氏)와 평해황씨(平海黃氏)가 개척했으며 아랫마을은 황보(皇甫)씨가 개척했다.
신태사 신몽삼의 묘는 기계면 화봉리에 있으며 1918년에 지석이 발견됐다.
묘비에는 ‘태사공영주신지묘’라고 되어 있고 배위에 정부인 문주류씨라 기록돼 있다.
신몽삼은 고려 명종 19년(1189)에 급제해 보문각 대제학 검교 태사 영원부원군에 올랐다.
▲윤태사= 윤신달은 파평 윤씨 시조로 고려태사 벼슬을 지낸 인물이다.
윤태사는 동료인 신숭겸, 홍유 등과 더불어 918년 궁예를 축출하고 새로운 국왕으로 왕건을 추대했다.
왕건의 고려 건국에 대한 공로로 2등 공신에 책훈돼 윤신달에게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의 관직이 내려졌다.
기계면 봉계2리 운주산에 위치한 윤태사 묘소는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알려져있다. 후손들은 이곳에서 해마다 음력 10월 1일 추향제를 열고 있다.
이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조선 영조 때 창건된 재실 건물인 봉강재는 28세손인 윤광소(尹光紹)가 처음 건립했으며 이후 1762년과 1763년에 수리됐다.
이것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1호로 지정됐으며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구조재의 짜임새가 세심하게 이뤄진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1868년 내려진 서원철폐령으로 부서진 봉강서원 자리에 세워진 유허비 역시 파평 윤씨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대표적 문화재로 손꼽힌다. 장상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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