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유재원기자](재)대구문화예술진흥원(원장 ‘박순태’) 박물관운영본부 소속 대구근대역사관은 작은 전시 ‘1909년 순종 황제의 대구 행차와 대구 사회’를 지난 29일부터 다음해 2월 9일까지 대구근대역사관 1층 ‘대구 근대여행 길잡이방’에서 개최한다.
이번 작은 전시에서는 1909년(융희 3) 1월 대구를 방문했던 순종 황제에 대해 주목하며, 국권을 빼앗기기 직전의 아픈 역사이지만 한겨울에 행해진 순종의 순행은 어떤 의미와 영향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전시 기획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1909년 1월~2월 두 차례 순행을 했다. 전시에서는 신문 기사·사진·각종 지도·통감부 기록 등을 통해 순종 행차 당시 대구의 모습과 행차 이후 대구 사회를 돌아볼 수 있으며, 이미지와 실물 자료 2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1909년 행차 때, 대구의 모습은 이러했다. 1월 7일 순종을 환영하기 위해 거리에는 3만여 명이 모였고, 수창학교(현 대구수창초등학교) 학생들은 순종이 군함에 태워져 일본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고 여겨 이를 저지하고자 철로에 누워 순종의 행차를 막으려고 했다.
동년 1월 12일에 순종은 요배전이 건립돼 있던 달성공원을 찾아 학생들의 운동회와 무용 등을 관람하고 공원의 언덕을 거닐며 도심을 바라보았다. 순종의 대구 행차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2번의 연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달성공원을 찾은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는 기념식수를 한 바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현재 달성공원에 남아있는 가이즈카 향나무를 이때 심어진 기념식수라 하여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료에 따르면, 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가 지은 ‘대구물어(大邱物語)’(1931)에 “달성공원에 행차해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가 기념식수를 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어 1931년부터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의 기념식수는 그 흔적으로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형석 대구근대역사관장은 “대구근대역사관은 대구를 찾은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대구 역사의 일면을 살펴보고 있는데, 지난해 발간한 학술자료집 ‘대구근대역사관과 근대 대구’ I(2023년)에서는 미국 해군 장교 조지 포크(1884년)와 여행가 샤를 바라(1888~1889년), 뮈텔 주교(1893년, 1903년), 그리고 윌리엄 베어드 목사(1895년) 등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에 보이는 대구의 모습을 주목했다”며 “1909년 순종의 행차도 당시 대구 사회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가을날 박물관에 오셔서 대구 역사와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