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가 생각하는 “변화와 쇄신”의 길이 과연 보수정당이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의 정치 입문과 더불어 나온 ‘국민의힘이 너무 우측으로 치우쳤다’란 말에서 시작, 대통령실과 사사건건 충돌을 빚는 작금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합리성과 조화를 추구하는 보수정당의 이념과 달리 너무 엇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개 개인의 경우 사상의 자유가 존중돼 뭘 추구해도 상관할 바 없으나, 한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여당의 대표가 추구하는 이념과 정체성은 중대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대표의 정치적 이념과 사상에 대해 지금껏 한번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발탁해 법무부장관에 임명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부당한 논리를 팩트로 저격할 때 대리만족을 느꼈을 뿐 국민의 면밀한 시선을 통한 제대로 된 인사 검증은 없었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한 대표에 대한 김경율 비상대책 위원의 평가였다. 김 위원의 ‘한 대표는 사민주의자(사회주의자)’란 고백에 우파 국민들은 당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강남 좌파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이나 한 대표가 사실이 아니라고 번복해 주길 바랐으나 끝내 한 대표의 관련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으로 지적받고 있는 핵심 인물 기용의 대표적 사례이기도 한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란 막강한 보호막 아래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한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이 되고 있다. 이러한 그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5주기 추도식에서 "의료보험, 부가가치세,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소양강댐, 근로자재산형성 저축 등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는 도전정신과 애국심으로 변화와 쇄신을 이끌었다"며 "그 마음을 이어받아서, 저도, 우리 국민의힘도 변화와 쇄신의 길로 가겠다"고 말했다.박 대통령께서 집권한 1960년대는 6·25 전쟁의 폐허만이 남은 고난의 시대였고,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과 산업화의 초석을 굳건히 한 시기였다. 그의 대기업 지원을 통한 수출 우선 정책과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설립, 의료보험 정책 등 어느 하나 야당으로부터 격렬한 반대와 거센 비난을 받지 않은 정책이 없었다. 그만큼 그의 정책은 당시엔 혁신적이었고 개혁적인 성향을 띄었다. 보수당에 속해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진보성향의 대통령이었다.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한 대표가 주구장창 노래하는 ‘국민 눈높이’가 아닌 50~100년 후의 대한민국의 번영과 안정을 꿈꾸며 먼저 국민을 계몽하고 지도력을 발휘해 개혁적인 정책들을 이끌었다. 국민 여론과 국민 눈높이는 언제나 한결 같을 순 없다. 변화가 빠른 세상 속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빨리 빨리`를 좋아하는 한국 국민성을 생각할 때 국민 눈높이를 추구하는 정책(인기 영합정책)은 대부분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는 모쪼록 적어도 50년 뒤를 내다보고 정책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들이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을 2024년 현재 세계 10위권 선진국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국민이 비록 우수하지만 현재 국민 눈높이에 맞춤 정책으로 어찌 살벌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나. 잘살기를 고대하기 전에 생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의 추도식, 그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참석한 것이라면, 그가 이뤄낸 결과만 칭송할 것이 아니라 “내 무덤에 침을 밷어라”할 만큼 그의 고단했던 삶의 여정과 지도자로서의 고뇌를 익히고 돌아와야 할 것이다.   특히 박근령 유족 대표가 참석자에 대한 감사 인사에서 한동훈 대표를 제외한데 반해 추경호 원내대표를 왜 격하게 칭찬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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