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담았죠. 곡에서 예전 같은 `폭발`은 없을 거에요. 신기하게도 대중은 그게 느껴지나 봐요."
보컬 듀오 바이브(윤민수·류재현)가 최근 정규 5집을 들고 오랜만에 대중을 찾았다. 지난 2010년 5월 4집 `바이브 인 프라하`(Vibe In Praha) 이후 3년 만이다.
최근 중구 을지로에서 만난 바이브는 이번 음반의 핵심을 `아날로그`로 설명했다. 앨범명도 `오가닉 사운드`(Organic Sound)다.
그동안 `다시 와주라` `술이야` `미워도 다시 한번` 등 폭발적인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들로 큰 사랑을 받아온 이들은 이번엔 힘을 `쫙` 빼고 아날로그의 옷을 입었다.
"전작에서는 욕심이 컸어요. 무언가 `제대로` 해보고픈 마음에 음악이나 보컬 모두 강했죠. 늘 `처절한 이별`을 불렀던 것 같아요. 막상 사랑받은 건 힘을 뺀 노래들이었는데." (윤민수)
이 같은 시도는 3년에 걸친 음반 제작 과정 동안 빈티지 사운드에 매달린 류재현의 노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1959년산 마이크, 1970년대 장비 등을 사용해 아날로그 사운드를 빚어냈다. 레코딩도 요즘의 디지털 방식이 아닌 과거 릴 테이프(Reel Tape) 방식으로 했다.
"곡을 쓰면서 일본과 영국의 레코딩 장비와 악기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1960-70년대 악기를 찾아다녔죠. 일본에서 빈티지 악기들을 사 왔어요. 연주자들과 콘셉트 회의를 거쳐 `오가닉 사운드`에 맞게 곡을 바꿨습니다."(류재현)
특히 릴 테이프 방식의 녹음은 음원을 중간에 끊어 연결할 수 있는 디지털 방식과 달리 작업 도중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녹음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타이틀곡 `이 나이 먹도록`만 해도 세 번이나 녹음을 거쳤다.
류재현은 "섬세하게 녹음을 하고 싶어도 `한 방`에 끝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릴 테이프 방식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고 토로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아날로그를 외치지만 우리는 이를 굳이 언급하려 하지 않았죠. 그런데 사람의 귀가 신비로운 게, 눈치를 채지 못해도 무의식적으로 알아채요. 굳이 `아날로그로 했다`고 내세울 필요가 없는 이유죠. 아날로그는 잊히는 방식도 다를 거에요. 저희는 아름답게 잊힐 방법을 찾은 거죠." (류재현)
아날로그를 고수한 이유는 대중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음반을 남기고픈 욕심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윤민수는 "요즘은 음악 소비 패턴이 너무 빠르다. 신곡도 2주면 사라진다"며 "오래 남는 곡은 자연스럽고 따뜻한 노래더라. 닮고 싶은 선배들을 보면 테크닉 없이 그냥 질러도 소울(Soul)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저희의 색깔을 지키고 싶었어요.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색깔에 맞춰 포장한 거죠. 처음엔 미국 동부 음악 장르인 `필리 소울`(Philly Soul, 필라델피아 소울)을 하고 싶었지만, 대중성이 떨어져 `모타운 사운드`(Motown Sound, 1960년대 유명 가수들을 배출한 모타운 레코드사가 유행시킨 음악 스타일)쪽으로 잡았습니다."(류재현)
또 한 가지, 포크 장르로 대변되는 아날로그 감성이 최근 우리나라 가요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브는 이러한 트렌드가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이 아니라 과거 김현식·김광석 등으로 이어져 온 우리의 고유한 감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윤민수는 "우리 음악을 `K 소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억지로 영어 애드리브를 넣어야 인정받은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저도 알앤비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옛날 선배들의 보컬을 닮으려고 노력해요. 조용필, 김광석, 김현식 선배 등 우리나라만 할 수 있는 감성이 있거든요. 그걸 정착시키고, 알리고 싶어요."(윤민수)
음반의 첫 번째 트랙인 `이 나이 먹도록`은 이 같은 앨범의 성격이 가장 잘 묻어난 곡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커져만 가는 회한과 그리움을 편안하게 담아냈다.
"30대 중반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많이 넣었어요. 주변 친구들의 고민이라 할 수 있죠.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돈도 없는데 헤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류재현)
그렇지만 바이브 두 멤버 전부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란 점은 재미있는 역설이다. 게다가 그 가운데 한 명은 MBC TV `일밤 - 아빠 어디가`로 `국민 아빠`로 등극한 윤민수다. 싱글 남성의 마음을 어떻게 이리 절절하게 표현했을까.
이 곡의 가사를 쓴 류재현은 "우리는 지금 행복하지만 그걸 반대로 뒤집으면 정말 슬퍼지는 것"이라며 "곡을 쓸 때는 언제나 그 반대로 상상해서 쓴다. 역발상"이라고 설명했다.
소속사 식구 린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7번 트랙 `압구정 4번 출구`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잡아끈다.
노래는 `바이브스럽지 않은` 펑키한 멜로디에 `바로 너, 저는 코만 살짝, 바로 너, 저는 눈만 살짝 찝었어요, 바로 너, 턱이랑 이마도` 같은 코믹한 가사를 얹어 사회에 이는 성형 열풍을 뒤튼다.
"바이브 노래는 늘 진지하잖아요. 이번 음반은 가볍게 가고 싶었죠. 어느 날 `압구정 4번 출구`하면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윤)민수에게 물었더니, `성형`이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재미있게 성형 열풍을 풍자하게 됐어요. 풍자가 있는 행복하고 재미있는 노래입니다."(류재현)
바이브는 빠르면 올가을부터 콘서트를 통해 팬들과 만난다. 대형 공연장이 아닌 200-300명 규모의 작은 공연장에서 되도록 자주 소통한다는 계획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요즘 아이들이 바이브를 몰라요. `윤후 아빠`로 알겠죠. 그래서 최대한 관객과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공연장에서 하려고 해요. 넓은 곳은 함께 공감하기 어렵잖아요. 음반도 계속 정규 앨범으로만 정성스레 낼 겁니다." (윤민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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