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所遣信來 以敬辱之 於此貧薄 一无所有 不得仕也 莫瞋好邪 荷陰之後 永日不忘" "보내주신 편지 삼가 잘 받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 몸은 빈궁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으며 벼슬도 얻지 못하고 있나이다. 그러나 좋고 나쁨에 대해서 화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 무슨 이유인지 가난에 쪼들린 어떤 사람이 권력자에게 벼슬자리를 구하는 편지다. 이 짧은 편지는 나무를 깎아 종이처럼 사용한 필기도구인 목간(木簡)에 붓글씨로 썼다. 놀랍게도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백제가 사비(부여)에 도읍하던 시기(538-668)에 사비에 살던 사람이다. 벼슬자리를 청탁하는 내용을 담은 백제시대 편지목간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페이스북 기반의 학술문화운동단체인 문문(文文. 회장 홍승직)이 오는 25일 오전 11시 충남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새로 만난 문물(文物), 다시 보는 문물(文物)`을 주제로 하는 제2회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최근 새롭게 발굴조사 등을 통해 알려졌거나, 기존에 알려진 자료라 해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한 연구성과 5편이 공개된다. 백제 편지목간 외에도 성남 판교 신도시 개발과정에서 발굴한 고려시대 비로자나불상 1구와 지장보살상 2구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며, 당으로 끌려간 백제 의자왕의 외손 묘지명(墓誌銘)이 소개된다. 백제 편지목간은 2010년 부여군 구아리 319 유적에 대한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의 발굴조사에서 다른 백제시대 목간들과 함께 출토됐다. 목간은 긴 판자 형태다. 아래쪽 일부가 없어졌지만 완형에 가깝다. 크기는 길이 25.2㎝, 폭 3.5㎝, 두께 0.3㎝. 이에 적힌 글자는 한 구절이 4글자인 4구체이며, 앞면에 4언 3구가 있고 뒷면에 4언 5구가 확인된다. 이를 발굴하고 판독한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심상육 선임연구원과 김영문 전 서울대 중문과 강사는 이번 발표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로 간주했다. 그 근거로 목간 두께가 비교적 얇고, 문자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기록 방식이 일정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종이 또는 천에 적을 내용을 나무에 연습한 편지의 초고(草稿)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007-2008년 성남 판교지구 10구역 다 지점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 건물터와 이곳에서 수습한 고려시대 불상 자료도 이번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소개된다. 발굴조사단 일원인 정훈진 연구원은 이런 유물이 나온 건물은 사찰에 달린 작은 암자였을 것으로 보았다. 불교미술사학자인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HK교수는 그 출토 유물 중에서도 비로자나불상(1구)은 12세기 후반 작품인 반면, 합장한 모습의 보살상 2구는 단언은 힘들지만 지장보살로 판단되며, 제작 시기는 12세기 전반 작품으로 보았다. 이들 불상과 보살상은 출토 유물이며, 무엇보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불교미술사 연구의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김영관 제주대 사학과 교수는 중국 시안시 남쪽 장안(長安)박물관이 소장한 당나라 때 인물인 이제(李濟.776-825)의 묘지명을 소개한다. 그가 의자왕 후손이라는 점은 묘지명에는 직접 보이지 않지만 지난 2009년 먼저 공개된 의자왕 증손녀로서 당 황실의 종실에 시집간 태비(太妃)인 부여씨(扶餘氏) 묘지명을 종합하면 이제가 바로 의자왕의 외손임을 알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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