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영국시인 T.S 앨리엇의 서사시 ‘황무지’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던 4월도 지났다.
지난 4월은 유난히도 변화무쌍한 달이었다.
바람과 비, 심지어 눈까지 내려 마음을 스산하게 하더니 급기야 아직도 할 일 많고 살아가야할 날이 많이 남은 친구마저 데려가는 잔인함을 보였다.
이제 먹구름 같던 4월이 가고 청춘의 설레는 가슴처럼 상큼한 5월이 왔다.
필자의 사무실 한 벽을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는 100호가 넘는 수묵화(水墨畵)가 빛을 발한다.
지난해 ‘제7회 포항-포스코 불빛미술대전’에서 한국화 부문 입선작인 ‘내연산의 봄’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의 오랜 친구이며 산이 좋아 가야산 자락에 은둔하며 그림과 드럼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진정한 산꾼, 이한섭의 작품이다.
그림속의 내연산 계곡에 잔잔한 물이 소리 내어 흐르고 검푸른 암벽 사이로 붉은 연지를 바른 진달래가 수줍은 듯 바위틈을 헤집고 나온다.
마른 가지만 흔들어대던 상수리나무에도 연두빛 희망의 새잎이 화폭에 색조를 더한다.
아스라이 먼 빛 으로 얼굴 내민 높은 봉우리는 아직도 희끗한 모습으로 다가선 봄을 거부하는 듯하다.
그래도 늘 푸른 기개를 자랑하는 소나무만은 가는 세월을 잊은 양 봄을 시샘하지도 않는다.
‘내연산(內延山)’ 은 우리지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산이다.
우리지역으로선 ‘종산(宗山)’이라 할 수 있는 위엄을 지닌 산으로 너른 자락으로 주변을 감싸고 있으며 마주하고 있는 ‘천령산(天嶺山)’ 과 함께 천하절경(天下絶景) 내연골 12폭포를 토해내는 명품산수를 만들고 있다.
글로 표현하기도 어렵지만 그 속을 알지 못하면 더욱더 진가(眞價)를 말하기 힘 든다.
일찍이 그 옛날 조선조 숙종때 최고 화가인 겸재 정선(鄭敾)의 ‘진경산수(眞景山水)’에 담겨 있는 내연산의 빼어난 풍광은 우리나라 대표적 산수화의 본색이 거기에 있다.
봄이 되면 더욱 산꾼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내연ㆍ천령산을 아울러는 ‘6봉종주(六峰從走)’가 매력적이다.
낮 시간의 길이가 길어져 산행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5월이 가장 적기다.
천령산 우척봉을 들머리로 삿갓봉, 매봉을 지나 내연산 최고봉인 향로봉을 거쳐 삼지봉, 문수봉을 돌아 보경사로 하산하는 종주산행은 전문 산꾼이 아니라도 당일 산행이 가능하며 10시간 정도로 잡으면 넉넉하다.
여섯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종주 산행이 어렵긴 해도 부드러운 육산(肉山)이라 한번쯤 도전해 볼 만한 산행이다.
6봉 아래로 내려 뻗은 계곡으로 흘러내린 물이 ‘명승(名勝) 12폭포’를 만들어 내는 내연골의 긴 골짜기를 따라 자지러질 듯 흐르는 물소리가 깎아지른 암벽과 함께 산속의 하모니를 연출한다.
시원한 물줄기를 따라 오르내리다 보면 배고픈 까마귀가 반갑게 맞이하며 숲속을 헤집고 뛰어 나오는 다람쥐와 청솔모가 낯설지 않다.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등산객들의 화사한 옷차림과 가벼운 발놀림에 5월의 푸르름이 바람을 만든다.
산등성이를 넘나드는 숲속에는 이르게 피고 떨어진 진달래의 붉은 입술이 산길을 물들이고 뒤 미처 피어나는 연달래의 연분홍 꽃잎이 초록의 잎새 속에서 얼굴을 붉힌다.
내연산은 이래서 봄이 좋다.
물론 여름, 가을 또한 겨울에도 그 나름의 멋이 있지만 봄 만한 정취가 없는듯하다.
5월의 파란하늘 아래 산그늘이 지고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보경사 대웅전 풍경소리가 청아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면 어느덧 선경(仙景)이 캔버스에 들어와 앉는다.
왁자지껄 웃어대는 행락객들의 웃음소리도 내연산의 산수화에 젖어 들어 화선지에 스며든다.
‘내연산의 봄!’ 즐길만한 가치가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값진 자산(資産)이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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