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가요 관계자들이 `이 남자`의 연락처를 물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작곡을 부탁하고 싶다` `랩 피처링을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이 남자, 버벌진트(본명 김진태·33)다. 낮고 음침한 랩도 매력적이지만 그가 발표한 자기 곡과 래퍼로 참여한 곡들이 음원차트에서 연이은 히트를 기록했다. 그는 2011년 `좋아보여`를 시작으로 지난해 `굿모닝`과 `충분히 예뻐`, 올해 `시작이 좋아` `이게 사랑이 아니면` 등으로 주요 음원차트 최상위권을 모두 휩쓸었다. 또 최근에는 여성듀오 다비치의 `녹는 중`과 그룹 팬텀의 `몸만와`를 작곡하고 랩에도 참여해 음원차트 1위도 기록했다. 아이돌 그룹부터 보컬로 승부하는 가수들까지 곡 요청이 이어진다. 말 그대로 대박 퍼레이드를 펼치는 가장 `핫 한` 래퍼다. 가왕(歌王) 조용필도 그런 그를 주목했다. 19집 타이틀곡 `헬로`(Hello)의 랩을 주문했다. 최근 을지로에서 만난 버벌진트는 "2월 중순 소속사 대표(라이머)로부터 조용필 선배의 제안을 듣고 꼭 하고 싶으니 빨리 답장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래퍼에게 넘어가면 질투가 날 것 같았다"고 웃었다. 얼마 후 조용필에게서 가사가 담긴 `헬로` 데모곡을 받았다. 특별한 주문은 없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작업 거는 내용`으로 가사를 해석했고 조용필의 연륜을 고려해 절제되고 여유로운 표현을 랩 가사에 담았다. 수월하게 `후루룩` 써내려갈 수 있었다고 한다. 녹음 당일에도 조용필은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선배님은 `랩 가사를 수정해달라` `어떤 스타일로 랩을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어요. 단지 제가 너무 긴장하니까 `긴장을 풀고 마음대로 해라`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으니 톤을 4도 정도 올리라`고만 하셨죠." 조용필 세대는 아니지만 조용필의 음악에 대한 추억은 꽤 있다. 아버지가 소장한 조용필의 LP를 들으며 자랐고 300원짜리 피아노 악보를 구입해 `허공` `친구여` 등을 피아노로 연습하곤 했다. 그는 "전국민이 인정하는 가요계 왕이 10년 만에 컴백하는 앨범에 참여하고 쇼케이스 무대에도 오른 건 돌아봐도 떨리고 감격적인 순간"이라고 했다. 상승세인 그에게 요즘 새로운 도전 거리가 생겼다. 1일부터 윤상의 후임으로 KBS 쿨FM 팝 전문프로그램 `버벌진트의 팝스팝스`(매일 오전 11시)를 진행한다. 인터뷰 당일, 처음으로 `테스트 녹음`을 해봤다는 그는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학창시절 나름 `라디오 키드`였다"고 했다. "AFKN부터 FM까지 가리지 않고 들었죠. 중학교 때부터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요. 푸른하늘 유영석, 빛과소금, 이승연, 이문세 등의 선배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팝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배철수 선배님처럼 내공있는 진행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고 청취율도 신경쓰여요. 하하." 그는 "배철수 선배처럼 툭툭 내뱉는 무심하고 담백한 진행을 하고 싶다"며 "나도 내공이 쌓이면 그런 타입이 어울릴 것 같다. 넉살좋고 찰지게 수다를 떠는 건 못하겠다. 하지만 1990년대 팝과 얼터너티브 록, 힙합 등 내가 목격한 시절의 장면들은 자신있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청취자들을 끌어오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지금은 힙합에 매진하지만 그는 학창 시절 다양한 장르를 포식했다. 한영외고 시절 스쿨밴드를 만들어 보컬 겸 기타로 활동했다. 1999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1학년 때 PC통신 나우누리의 흑인음악 창작동호회인 SNP(Show N Prove)에서 가수 데프콘, 정인, 휘성 등 당시엔 음악 아마추어들을 만나 교류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독립 음반을 제작해보기로 했다. "SNP 회원들을 통해 많은 걸 배우면서 2000년 가내수공업으로 공CD에 음원을 굽고 컬러복사기로 재킷을 만들어 팔았죠. 2001년 7월에는 미니음반 `모던 라임스`(Modern Rhymes)도 냈는데 홍대 음반매장 다섯군데에 박스를 들고 직접 유통도 시켰어요. 당시 음반이 잘 팔렸고 주목도 받았어요. 하하." 2011년 9월 카투사로 입대한 그는 2003년 제대 후 복학과 함께 다른 가수의 음반에 피처링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2007-2009년에도 직접 제작한 음반을 꾸준히 선보였다. 인디 힙합계에서 활동한 것만 10년이다. 그는 "10년 무명이라고들 하는데 난 매순간 성공적이고 흑자였다고 여긴다"며 "마니아에게 주목받고 싶었을 뿐 내 음악이 TV에 안 나온다고 욕구 불만을 느낀 적이 없다. 내가 제작한 음반이 사업적으로도 모두 짭짤했다. 어둠의 시절이 없었다"고 웃었다. 정확한 발음과 타고난 저음 덕에 2005년부터는 성우로도 활약했다. 케이블TV의 스팟 광고를 시작으로 자동차, 음료, 가구, 노트북, 카메라, 스마트폰 등 유명 기업들의 TV 광고 내레이션을 맡았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중략)두려움을 즐겨야 새로워질 수 있다.`(현대카드), `속도의 차이가 역사를 바꾼다`(LG유플러스) 그러나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2009년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바쁜 생활로 휴학이 잦아졌고 결국 지난 3월 미등록 제적됐다. 그는 "2009년께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저작권법과 문화산업 관련 법을 공부하고 싶어 로스쿨에 진학했다"며 "그런데 결국 치열한 고시생이 되어야 하더라. 나 같은 마인드로는 시간만 소비할 뿐이었다. 소질이 있는 걸 파기에도 인생이 모자란다는 생각에 양다리를 안 걸치기로 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어도 빌빌대는 삼류 변호사가 됐을 것"이라고 웃었다. 음악에 자신을 불태우기로 했다는 그에게 음악이란. "살고 싶은 꿈이죠."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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