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뛰어노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다들 앉아서 휴대폰 게임을 하더라고요. 우리는 정말 많은 냄새를 맡고 자랐잖아요. 밥 짓는 냄새, 흙탕물 냄새, 재래시장의 기름 냄새…. 이런 걸 공유할 수 없어서 무척 아쉬워요."
놀이터를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대신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터덜터덜 발소리만 남았다.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배우 최강희는 "영화를 보는데 화면에서 아이가 혼자 걸어가는 장면이 그렇게 위태롭고 이상해 보였다"며 "왜 길에 아이가 혼자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다음 달 16일 개봉하는 영화 `미나문방구`는 최강희에게 `노랗고 아득한 빛`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큰 눈을 동그랗게 뜬 최강희는 "때로는 주황빛이 돌고 때로는 화사한, 해질녘 햇빛 같은 노란 빛"이라고 이 영화를 묘사했다.
"어릴 때 운동회가 열리면 직접 들리진 않지만 부모님은 어딘가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잖아요. 그 외침을 이제야 들은 것처럼 따뜻한 위로 같은 영화에요."
영화는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졸지에 문방구를 맡게 된 주인공 미나(최강희)가 골칫거리인 문방구를 통째로 팔아버리려 하지만 `초딩 단골`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면서 겪는 얘기를 그리고 있다.
"사실 제가 애들을 조금 무서워해요. 어른은 상황을 생각하지만 애들은 순수하니까 `돌직구`잖아요."
최강희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이상했던 것 같아요. (웃음) 벽돌을 가져다 내 집을 갖겠다고 집을 지었어요. 그러면 아침에 인부들이 벽돌을 도로 다 치워놨죠. 제가 요정인 줄 알고 요술봉을 찾으러 애들 필통에 있는 펜을 전부 화장실에서 돌려보기도 했죠."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라는 동요 가사처럼 앞으로 걸어가면 지구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을 줄 알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다소 엉뚱한 행동과 말 때문에 그동안 최강희에게 주로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4차원`이었다.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그 성격을 조금 고친 것 같아요.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었거든요. 한번은 PD가 `외계어 사용 금지` 등의 수칙을 정해줬어요. 충격적이었죠. 제가 사용하는 말이 외계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거든요."
`4차원`에서 조금씩 벗어나자 더 많은 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그만큼 라디오에 대한 애착도 많았던 터라 작년 말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을 때는 너무 슬퍼서 "실연당한 여자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실연당한 것 같은 슬픔`은 영화 `미나문방구`를 함께 찍은 아역 배우들 덕분에 극복했다. 영화 내내 아역이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30여명까지 등장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단다.
"애들이 보통 5∼6명씩 떠들고 있어서 제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아요. (웃음)"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와 한때 단절했던 관계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이는 차기작으로 `미나문방구`를 선택한 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초반 `화가 많이 나 있어야 하는` 미나 역은 쉽지 않았다.
"저는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에요. 화가 나도 `(상대방이) 이래서 이랬겠지`하고 이해하거든요. 하지만 극중 미나는 자기만 생각하고 화를 터뜨릴 줄도 아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힘들었지만 그게 제가 미나에게 배우고 싶은 점이기도 해요."
영화는 초반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부 경주에서 찍었다.
"경주에 정말 큰 매력을 느꼈어요.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어서 하늘이 그대로 내려다보여요. 매일 의자를 갖다 놓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있었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최강희에게 영화 속 `미나문방구`와 같은 존재는 무엇인지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최강희는 곧 데뷔 초를 떠올렸다.
"청소년 드라마 시절에 저와 같이 출연한 양동근, 안재모 씨 모두 다 돈이 없었어요. 분식집에 가서 김밥 조금 시켜서 같이 먹고, 전철을 타고 가서 한강에 앉아있었죠. 그때는 다른 돈 많은 연기자보다 `구리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그 시기가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됐다.
최강희는 "그때 등 따뜻하고 배불렀으면 낭만이 될 수 없고 끈끈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당시에는 수치스러웠지만 지나고 나니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 같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롤모델`로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라비앙 로즈` 등에 출연한 프랑스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를 꼽은 최강희는 "잊히지 않는 첫사랑처럼 몰입이나 공감이 되는, `대체할 수 없는 기억`과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번엔 로맨틱 코미디 말고 그냥 멜로나 조금 더 자극적인 역을 해보고 싶어요. 하얗지만 약간 푸른 빛이 도는 역 있잖아요. 거기에 빨간색이 더해지면 아름다우면서도 자극적인 것 같아요. 얼음에 피가 뿌려지거나 수영장에 빨간 핏방울이 떨어지는 거요. 병원도 그렇고요. 그런 색감의 역은 안 해본 것 같아요."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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