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은 추워지고, 살기가 각박해지는 것 같다. 사시사철의 출렁임에 따라 삶이 물결지지만 우리네 인생은 보다 겨울을 향하여 저무는 듯 보인다. 필자가 일하는 소방서(消防署)의 의미를 헤아리자면 소멸함을 대비하여 방어하는 관청이라는 뜻인데, 그 속에는 화재를 예측하여 방지한다는 예방(豫防)과 또 재난에 맞서 상대한다는 대응(對應)의 뜻을 아우르고 있다. 연중 별다른 불조심의 때가 있겠느냐마는 계절이 요동치며 화기(火器)의 사용이 늘어나는 이맘때엔 느슨해진 우리의 마음을 바짝 일으킬 필요가 있다. 불은 사람의 마음 같아서 따뜻한 기운을 주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전부를 앗아갈 수도 있어서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초기작으로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가 광산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땀을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정직한 모습을 재현하고자 한 작품으로서, 가난한 가족이 석유 램프 아래에서 감자를 나눠 먹는 장면을 그렸다. 북유럽의 겨울은 가혹하였다. 귀족들은 벽난로를 태우고 창에 두꺼운 커튼을 쳤으며 바닥에는 짐승의 모피를 깔고서 추위를 견뎠지만, 가난한 이들은 작은 화로를 피우고 데운 벽돌을 안고서 겨울을 버텼다. ‘감자 먹는 사람들’에선 별다른 난방장치와 가구조차 마땅치 않은 천장이 낮은 집을 보여준다. 주름이 깊은 식구들이 두꺼운 옷을 입고 식사를 나누고 있지만, 작은 나무 식탁 위에는 으깬 감자와 따뜻한 차가 있을 뿐이다. 천장에 매달린 작은 기름 램프가 흔들리며, 식구들의 고난스러웠던 하루를 얼핏 비춘다. 단단하고 거친 손, 그을리고 메마른 얼굴이지만, 그들은 식사의 순간에 충실하여 생명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다만 살아가는 일이 숭고해 보인다. 사람의 사이에 묻어있는 온기를 생각해보면, 서로를 위한 사랑의 거리로 인해, 다만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다. 흔들리는 램프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빛나고 있다. 우리의 설화 가운데 불에 관한 가장 놀라운 표현은 ‘지귀(志鬼)설화’이다. 선덕여왕을 애절하게 사모하던 지귀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영묘사(靈妙寺) 돌탑 아래 잠깐 잠든 동안 선덕여왕이 다녀가며 가슴에 금팔찌를 두고 갔다. 나중에 잠이 깬 지귀는 선덕여왕이 두고 간 금팔찌를 보고 애절한 마음이 불타올라 화귀(火鬼)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간절한 사랑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몸이 불타오를 정도의 간곡한 바람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후 선덕여왕이 쓴 글을 대문에 붙여 불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지귀를 쫓았다고 한다. 불은 사랑의 기운 같아서, 몸을 덥히고 세계를 따뜻하게 만든다. 누구나 불을 조심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화재는 일어나기에, 더욱 조심해야만 한다. 사나운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는 불을 잘 다스려야 하고, 또 세계를 덥힐 만큼의 큰 사랑이 필요하다. 불조심은 당연하지만 더욱 조심하고, 관계를 보살피는 정성으로 마음의 겨울을 이겨내자. -대구달성소방서 예방안전과 소방교 전인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