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물은 순수하고 까다롭다. 그 순수성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물은 돌변한다. 성질이 변하면 환경위험을 초래하고 양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있으면 홍수가 되거나 가뭄이 된다. 바다는 커다란 물이다. 넘치면 범람되고 에너지를 머금으면 쓰나미가 된다. 물은 그래서 예민한 균형자이다. 물은 아무리 작은 잔에 담겨 있더라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그 한 잔이 사막에서는 여러 사람의 목숨이 될 때가 있고 한 잔의 오염이 全 생태계를 교란시키기도 한다. 마시는 물은 마음가짐이고 접하는 물은 태도이다. 우리 몸으로 받아들이는 물은 항상 감사한 마음이, 이용하는 태도에는 겸손이 요구된다. 집에서 목욕하는 물은 접하는 물이며 밖의 강과 바다도 매 한가지다. 그 때마다 물은 우리에게 마음과 태도를 요구한다. 댐과 공장 같은 산업체에서의 물이든 놀이의 물이든 마찬가지다. 공적인 장소에서의 물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놀이에서 조차도 사람의 자세를 본다. 자신의 수영능력을 과신하거나 술을 먹고 음주수영을 하는 방종의 모습을 보일 때 어김없이 책임을 요구한다. 물은 엄격한 관찰자이며 심판자이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경북 어느 해수욕장에서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바다수영을 하던 대학생 네 명이 안타깝게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 젊은이들 중에는 어렵게 자식을 가진 3대 장손도 있었고 아버지가 없는 다문화 가정 어머니의 희망이었던 아들도 있었다. 최근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많은 유튜버들이 범람하는 파도를 우습게 보고 촬영하다가 휩쓸려 사고를 당하는 영상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은 땅과 닿아 있다. 그래서 바다는 역설적이게도 땅과 닮아 간다. (네덜란드, 핀란드는 ‘land’로 끝난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모두 물과 관련이 있다. 핀란드는 호수의 나라이며 네덜란드는 육지가 바다보다 낮은 땅이란 뜻이다.) 그래서 바다의 삶과 그 주변도 육지를 닮아가고 있다. 선원은 오랜 항해 보다는 육지 일터와 같이 정기적인 근무형태와 복지를 요구하고 있고 배는 커다란 건물처럼 크기를 키우고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기술발전과 더불어 오만해지고 있다. 화려하고 다양한 배와 각종 레저 장비나 수단을 이용해 거만함(돈)을 바다에 마구 표출하고 있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그러했으며 최근 그 잔해를 관광 하려던 재벌들이 탑승한 오션게이트 잠수정 사고(징후가 있음에도 무리하게 운행)도 있었다.물, 바다는 끊임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조심스러움과 경외심을 요구한다. 요즘도 어선을 진수할 때 틈틈이 용왕굿(띠뱃놀이 등 다양하게 불린다)을 지낸다고 출항하는 배가 있다.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는 많은 이들의 소망과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을 인도해 달라는 염원을 담아 용왕제를 지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본래의 염원은 어디가고 흥청망청 거하게 마시는 술판만을 생각하는 선장과 선원에게는 자비심이 없다. 나는 제주의 늙은 해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노련한 해녀는 눈앞에 여러 개의 자연산 전복이 펼쳐져 있더라도 마지막 숨은 남겨 놓은 채 다시 부상하며, 절대로 어린 전복을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수영실력이 월등한 신입 해녀는 본인 숨만큼 작업하려는 욕심을 부려 동료 해녀에게 피해를 준다고 한다. 그래서 반드시 숨이 차오를 때 까지 작업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떤 해녀도 바다를 다 모르기 때문이라고구명조끼도 없이 레저를 즐기거나 바다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바다가 쉬어야 하는 시간에 추태와 해루질 등 무분별한 행위들을 일삼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라는 하염없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나는 바다와 동고동락을 한 지 30년을 넘어가지만 두 가지 두려움이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부모처럼 불안하게 만든다. 하나는 나의 부지불식간의 실수로 인해 내 동료와 조직이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것이며, 또 하나는 나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가장 위기일 때 내가 제 역할을 못해내면 어떻게 하나인 것이다.실수는 예측 불가능한 것과 부주의에서 나온다. 주변에서 온갖 해상경험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라고 나를 추켜세우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변수가 바다에 도사리고 실제로 닥쳐온다. 경험으로 이를 헤쳐 나가기에는 나는 그 만큼 노련하거나 기민하지 못하다. 솔직히 다양한 보직을 거치고 모든 상황을 경험해 봤다는 것은 상대적이며 오만함이다.우리는 땅에서 수많은 규율과 겸손함을 요구받는 것을 무의식중에 인내 하고 있다. 집 앞에 조금이라도 가면 속력제한과 행동을 감시하는 CCTV가 곳곳에 있다. 강제적인 태도강요에 익숙해져 있고 불만도 없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과거의 도덕성이 지금은 수많은 규칙으로 더해지고 있다. 바다는 그 크기만큼 자애롭지만 철저히 요구한다. 수많은 난관에서도 일어서라고 땅보다 더한 강인함을 요구하고 개인의 이기심이 통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나는 ‘노인과 바다’에서처럼 하루하루를 바다에서 배우며, 주저앉았던 발이 땅을 딛고 일어서듯이 바다도 나를 일으킨다. 인간에게 보내는 바다의 자애가 오만한 자에게 분배 되지 않기를 바라며 갖은 파도의 흔들림에도 중심을 잡아 미래를 보는 겸손한 자가 바다의 미덕을 경험하기를 희망한다. 작자 : 경정 하병철, 포항해양경찰서 경비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드론을 활용한 해상수색뿐만 아니라 화재진압 등 경비작전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대규모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서 민관군 헬기를 총 동원하는 통합작전에 혁신을 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