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됐던 스무살 채수근 해병 상병이 급류에 휩쓸리면서 실종된 후 안타깝게 숨진채 발견됐다. 국민을 돕기 위해 나선 작업에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아무리 강한 해병대원이라고 하지만 구명조끼조차 입히지 않고 급류에 투입한 것은 어처구니 없는 헛된 죽음이었다. 젊은 해병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무리한 수색 작업이 강행된 원인을 규명하고, 수색 과정에 불합리한 명령이나 지시가 없었는지 밝히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 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해 분노가 치민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채 상병의 순직이 해병대 지휘부의 무리한 지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안전을 위해 장화 대신 전투화를 신어야 한다는 일선 간부들의 건의가 묵살됐고,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색하는 대신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 정성껏 탐색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고 한다. 무리한 지시를 한 책임자를 규명하는 작업도 축소·은폐 논란이 불거진 상태다.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 2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며 사건 자료를 경찰에 넘겼다. 그런데 국방부 검찰단은 갑자기 경찰에서 수사 자료를 회수하고, 해병대 수사단장을 ‘집단 항명의 수괴’로 입건한 뒤 보직 해임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가 임 사단장 등을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하고, 구체적인 죄명도 빼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채 상병이 사망한 지 20일이 지났는데, 사고 경위를 밝힐 수사도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약속들은 흐지부지된다. 원인을 규명하겠다는 약속은 책임을 회피하고 조사·수사를 축소하려는 시도로 대체되곤 한다. 조직 폐쇄성이 강한 군 관련 사건은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이예람 공군 성폭력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군사법원법을 개정해 군 사망 사건과 성폭력 사건 등에 범죄 혐의가 있을 경우 민간 경찰이 수사하도록 했다. 법을 고쳐도 이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전 국민이 궁금해하는 채 상병 의 사망원인을 소상하게 밝히는 게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