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이 6월 8일 7시 30분 해오름극장에서 초연됐다. 국립극장 주최/ 국립창극단 주관으로 개최된 ‘베니스의 상인들’은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우리 고유의 언어와 소리로 풀어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반으로 밀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 온 이성열이 연출하고, 고전을 지금의 이야기로 치환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작가 김은성이 첫 창극 극본을 썼다.음악은 창극 ‘귀토’, ‘리어’ 등에 참여한 한승석이 작창하고,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을 네 차례 수상한 원일이 작곡 했다.셰익스피어의 희극이 창극으로 초연 된다니...오페라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창극이든, 판소리든 그동안 볼만큼 봤다고 자부 하는데, 이건 정말 어떻게 변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그동안 너무 큰 기대를 안고 접했다가 수많은 창작극에 실망을 한 터라서 정말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관람을 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마다의 새로운 시도가 차곡차곡 쌓여 직조한 무대의 완성도는 ‘퍼펙트’환상 그 자체였다.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극·영화·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돼온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을 동시대적 감수성으로 재탄생시킨 김은성 작가는 원작이 지닌 시대 배경과 종교적·인종적 편견을 과감하게 거둬내고 사랑과 정의, 자비와 우정 등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재창작 했다.원작의 베니스 무역업자 안토니오는 젊은 소상인 조합의 리더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노회한 대자본가로 바뀌어 있었다. 또한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를 설정해 원작 속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요소를 정제하고, 현대 법정과 같이 법관과 변호사의 역할을 세분화하는 등 지금 이곳의 관객이 공감 할 수 있게 각색했다.독점적 대자본에 대항하는 젊은 소상인들의 이야기로 탈바꿈한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은 원작이 지닌 희극성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우리 소리와 만나 극대화 됐다.작창가 한승석은 다양한 장단과 음계·시김새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이야기 사이사이를 촘촘히 채웠다.역대 창극단 작품 중 최다의 곡으로 채웠다고 한다.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우러졌고, 16인조 구성의 음악과 전자음악을 조합해 작품의 몰입을 한층 끌어올렸다.국악기와 아이리쉬 휘슬, 마림바가 어우러지고, 모듈러 신시사이저, 건반, 기타가 조화를 이루어 적당한 자리에 절묘하게 안착한 음악들은 중독성과 대중성을 갖췄다. 해오름 극장의 음향시설이 이렇게 좋았나... 새삼 느꼈다. 가슴까지 난타하는 큰 북소리는 마치 나에게 “정신 차려라”고 하는 것 같았다.무대는 사랑과 자유가 충만한 환상의 섬 ‘벨몬트’와 냉혹한 법이 지배하는 현실의 ‘베니스’가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꾸며졌고, 안토니오는 원래 주인공으로 멋지고 선한 역할이라 빛나는 건 당연하고 그에 맞게 유태평양이 안정적이고 든든하게 그 역을 소화해 냈다. 그런 만큼 빌런이 멋지기는 쉽지 않다. 김준수는 그것을 해냈다. 마지막 신, 재판에 지고 살인 교사죄와 살인 미수 등 중죄로 처벌과 재산까지 몰수당하게 되었을 때 그의 절규가 소름 돋게 만들었다.“돈으로 다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돈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어 끝까지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울부짖었다. 그에게는 한 치의 미안함이나 반성도 없었다. 그런데 노래를 너무 잘해서 멋있기까지 했다.배경은 베니스이지만 보다보면 부산항이나 목포항 인천항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처럼 공감되고, 가슴이 뛰고, 화도 나고...주·조연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 하나 튀거나 부족함 없이 연기와 노랫가락이 맛깔스럽고 바로 그 역할로 녹여냈다.분명 개량한복 같은데 베니스에서 입었을듯한 의상 같고, 형형색색 화려한 비주얼의 인도 전통의상 ‘사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익숙하면서 이국적인 매력을 담아냈다. 마지막 단체 군무는 한국무용 춤사위에서 가져온 것 이 확실하다. 시원한 소리와 익살스러운 연기로 한바탕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 멋진 공연이었다.   글: 김숙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