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 앉아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을 지나쳐 가노라니 요양원의 침대와 휠체어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가 떠오른다. 가뜩이나 멜랑꼴리한 마음이 더 가라앉는다. 수십 미터를 가다 뒤를 돌아본다. 노인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휠체어를 좀 밀어 드릴까 물어볼 걸 그랬나?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 있을 무렵 저 앞쪽에서 백마를 탄 두 남자가 강아지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오고 있다.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다. 가까이서 보니 앞사람이 형, 뒷사람이 동생 같다. 두 백마는 갓길을 앞뒤로 걷고 호위무사 강아지는 길 가운데를 걷는 모습도 재미있다. 뒤돌아보니 노인이 이쪽을 바라보며 그대로 앉아 있다. 백마를 탄 두 남자가 노인과 가까워지자 노인이 천천히 일어서더니 휠체어를 밀며 느린 걸음으로 뒤돌아간다. 먼 길을 간 두 아들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강아지와 함께 마중 나왔다가 강아지는 더 멀리 내 보내고 자신은 거기 앉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부모의 일생이란, 어머니의 일생이란.잠시 걸음을 멈추고 동화 속 그림 같은 장면을 보며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의 애틋한 정조(情調)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왜 아름다운 관계에는 슬픔이 배어 있을까.
멜리데로 가는 길은 그럭저럭 걸을 만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유칼립투스 군락지도 좋았고,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고부터 자주 보이는 특이한 구조물이 호기심을 자극해 준 것도 좋았다. 크기는 대략 가로 2,3미터 세로 2미터, 폭 1미터 미만 가량의 목재 구조물에 삿갓 형태의 지붕을 얹은 매우 단순한 모양새다. 얼핏 보면 옛날 우리네 헛간이나 뒷간 같은데 지상에서 50센티미터 이상 띄워서 지은 이 구조물에는 계단이나 사다리가 없다. 나중 묵시아에서 피스테라로 가던 길에 맞은편에서 오던 한국인을 만난 적 있었다. 마드리드에 산다는 최진석 씨는 맛있는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며 까미노를 끝내면 꼭 마드리드에 들러 연락을 달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었다. 불가피하게 피스테라에서 많은 시일을 허비하고 포르투갈의 포르투를 거쳐 리스본에서 급히 마드리드 공항으로 가는 바람에 만나지 못해 귀국 후에도 못내 걸렸었다. 최근 그에게 물어보니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곡물창고 ‘오레오’라고 알려준다. 계단이 없는 것은 쥐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란다.사실 사리아를 지난 이후부터는 걷는 재미가 급격히 줄었다. 길도 풍경도 마음에 와 닿는 게 없었다. 모든 게 진부하게만 보였다. 살아야 하니까 사는 삶처럼 걸어야 하니까 걷는 길은 잔인한 부조리다. 이 길을 걸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어 그만 이쯤에서 까미노를 끝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아쉬움보다는 ‘빨리 이 길이 끝났으면’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당시 나는 진부함의 원인을 ‘늘 그렇고 그런’ 길 탓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사리아 이후의 길이 그 이전보다 훨씬 아름다웠던 것 같다. 내 기억과는 달리 카메라 속 사진들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진부함의 원인이 길에 있지 않다면 필경 내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왜?’ 라는 물음에는 답하지 않겠다. 분명한 것은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리아 이후의 100여 킬로미터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로만 해 두자.
멜리데의 아라이고스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쉰 쯤 돼 보이는 리셉션 남자 호스트가 한국어로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넨다. 국가별 인사말을 한두 마디씩 외어 둔 모양이다. 정성이 대단하다. 배정받은 2층 베드로 온 호스트가 한글로 감사의 인사말이 담긴 A4용지까지 놓고 간다. 어디서 ‘안녕하세요?’하는 또 다른 목소리의 한국어가 들린다. 1층 베드의 여성 투숙객이다. 깜짝 놀라는 내게 이름을 묻더니 베드 바닥에 손가락으로 내 이름을 한글로 적어 보인다. 놀랍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왔다는 팔로마 해리스는 스터디 그룹에서 한국어 공부 중이라고 했다. ‘카톡’도 이용하고 있다. 나의 전화기로 자신과 친구설정까지 한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그녀는 귀국 후에도 명절 등 특별한 날 한글과 영어를 섞은 안부를 물어오기도 한다.작은 백을 걸친 팔로마가 외출을 나가면서 ‘안녕히 계세요.’한다. 상황에 맞지 않는 인사에 새어 나오는 실소를 참으며 ‘잘 다녀오라.’고 응대해 주고 샤워와 세탁을 마쳤다. 응접 소파 앞 테이블위에 방명록이 펼쳐져 있다. 펜을 든다.‘까미노 750킬로미터를 60년 인생을 살아온 스타일대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착지가 멀지 않은 지금 돌아보면 아쉬움 속에 외로움도, 괴로움도, 잠깐의 설움도 있었지만 이 길은 참 아름다웠다. 그러나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 인생도, 까미노도 한 번이면 족하다. 잘 있거라, 내가 걸었던 길들아.’니체는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고 했다. 자신의 인생길이 진흙탕길이건, 벼랑길이건 처음부터 다시 걸어야 된다고 해도. ‘좋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초인이란 바로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일 테다. 한데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나는 아무래도 초인은 못 될 그릇인가보다. 유언장을 쓴 것도 아니건만 공연히 비장한 기분이다. 밖으로 나간다. 목에 머플러를 두르고 바람막이 점퍼를 입었는데도 쌀쌀하다. 식당을 찾아 무작정 주변을 걷는다. 아무리 둘러봐도 썩 마음에 드는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혼밥’ 중인 팔로마라도 보일까 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려 봐도 그녀도 안 보인다. 같이 나가자고 할 걸 그랬나? 한참을 배회하다 내일 가야할 까미노 길처에 있는 한 음식점에 들어간다. 치킨요리와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앉아 있노라니 까미노에서 자주 마주치던 리투아니아 아가씨가 혼자 들어온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60번째 생일 저녁 식사를 마쳤다. 생일상치고는 너무 빈약했던 탓일까, 왠지 아쉽다. 생선요리 하나를 추가할까 하다가 20유로라는 말에 그냥 일어섰다.멜리데는 폴포(문어 요리)로 유명하다. 꼭 폴포를 먹어보라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으나 그곳이 멜리데라는 건 기억하지 못해 좋아하는 문어를 먹어 볼 기회를 놓쳤다. 악착같이 걷는 사람, 노자가 말한 ‘허(虛)’가 없는 사람은 이럴 수밖에 없다. ‘악착같이 걷지 않겠노라.’ 그렇게 다짐을 하고서도 지키지 못한 것은 인생길에서 ‘허’를 두지 않고 걸었던 스타일 그대로 까미노를 걸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까미노를 걸어보라. 까미노의 자신이 바로 자신이다.까미노는 처음에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을 만나고, 다음엔 지역과 문화를 만나고, 이후엔 야고보를 만나며, 마침내 자신을 만나 내면에 깃든 신성(神性)과 자성(自性)을 발견하는 길이다. 모두 ‘허’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순례길의 도시와 마을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내가 무엇인들 제대로 만났을까. 다시 걷게 된다면 보다 느리게 걷고 싶다. 많은 것들을 보려 하기 보다는 더 자세히 보고 싶다. 더 멀리 가기 보다는 가까이 있는 들풀과 들꽃과 유적지를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 입에 맞거나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보다는 그 지역의 전통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