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론’에는 기이한 반지와 기게스라는 목동 이야기가 나온다.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조금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이다. 착한 목동에 불과했던 기게스는 반지의 힘을 이용해서 국왕을 죽이고 그 왕비를 부인으로 삼아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공직자들 특히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의 비리와 비위가 끊일 날이 없는 지금,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는 우리 자신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만약 기게스의 반지가 나에게 있다면 좋은 쪽으로만 활용할 거라고 다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기게스처럼 악용할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기게스의 반지를 낀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불체포 특권을 지닌 국회의원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5대 국회이후 소위 ‘방탄 국회’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것은 불법 비리 행위를 저지른 의원들을 정당한 사법 절차로부터 도피시키려고 걸핏하면 임시 국회를 연 데서 기인한 말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법적 정의에서 면탈시킨다는 점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기게스의 반지인 셈이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의 역사적 기원은 개인적 비리를 보호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 권력(본래는 왕권)으로부터 국민의 대표자를 보호해서 국민의 권리를 확보하자는 데 있었다. 왕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던 시대에는 국민의 대표자인 의원의 신분이 보장되어야만 왕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전 상대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지닌 행정부의 전횡으로부터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지속되어왔다. 특히 독재 정권에서는 그 의의가 자못 컸다. 그래서 불체포 특권이 강력하게 확립해 주는 것이 헌법의 미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불체포 특권이 남용되거나 악용되는 현실에서 과연 그것이 헌법적 미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민주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독재적 권력의 행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 불체포 특권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 권력이라는 것은 항상 남용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런 특권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한다. 우리 헌법이 불체포 특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이미 언급한 대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미덕일 수 있다. 기게스의 반지를 선용(善用)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처럼 불체포 특권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조지 액턴 경의 말이 국왕이나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말만은 아니다. 개인적이고 부도덕한 비리에 대한 심판마저도 차단할 수 있는 지위는 그 자체로 절대 권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를 견제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듯이 불체포 특권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 국회의원에 대한 견제 장치 또한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의원의 불체포 특권말고도 기게스의 반지가 많이 존재한다. 각종 비리 게이트들이 벌어지는 것도 바로 이런 반지를 끼려고 하는 부나방들의 몸짓의 결과다.지난 30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는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하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해 무기명 표결을 한 결과 재석 281인 중 찬성 160표, 반대 99표, 기권 22표로 통과시켰다.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찬성 요건을 넘겼다.하 의원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남도의원 선거 예비후보 공천을 도와주는 대가로 7000만원을 받고 2020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자치단체장과 보좌관 등으로부터 지역사무소 운영 경비 등 명목으로 575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체포동의 요청 이유에 대해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공천 헌금 등으로 이 정도 돈을 받은 사건들에서, 거의 예외 없이 구속 기소되거나 실형이 확정되었다”며 “대한민국의 법과 국민의 상식이 이런 매관매직 행위를 무거운 범죄로 보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하 의원은 신상발언을 통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조사에 성실히 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지역구 의원으로서 지역 활동을 위해 인식이 속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보장하는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이날 체포동의안 가결로 하 의원은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게 됐다.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내려놓기를 ‘권고적 당론’으로 정하는 등 가결에 힘을 실었다. 앞서 국민들은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를 보면서 국회의원의 특권에 대해 불만을 많이 터트리며, 왜 국회의원에게만 이런 특권이 허용돼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재명 대표와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던 민주당 의원 상당수도 하 의원의 체포동의안에는 찬성표를 던진 사람이 많아 보인다.169석 다수석으로 가부 키를 쥔 민주당은 의원들 개인에게 자율로 투표를 맡기기로 했으나 결과가 가결로 나오면서 ‘내로남불’ 논란에 직면할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 노 의원 표결 결과와 이번 결과를 연관지어 대야 공세를 펼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표결 직후 “민주당은 대선 때도 그렇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특권을 포기하겠다더니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국민들께서 잘 보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특권을 인정하던 선진국들도 점점 유명무실해지는 추세다. 국회의원과 국민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프랑스는 이미 1995년에 헌법을 개정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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