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戀歌). 세계 2차 대전. 독일 나치에 저항했던 그리스의 한 젊은 레지스탕스가 있었다. 당시 나치 독일은 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유전지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그리스를 침공했다. 파죽지세로 기우는 조국을 위해 사랑하는 연인을 남겨두고 전선(戰線)으로 임무를 떠나는 청년 레지스탕스, 그를 한없이 기다리는 어느 한 여인의 가슴 아픈 사연.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treno fevgi stis okto).“ 이 곡은 전선(戰線)으로 떠나 돌아올 줄 모르는 청년 레지스탕스를 기다리는 애달픔이 담겨있는 음악이다.두 연인은 지중해 연안의 도시 <카타리니>로 떠나는 기차를 타고 행복한 삶을 약속했다.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그 청년을 한없이 기다리는 여인. 그러나 청년은 눈앞에 펼쳐진 조국(祖國)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8시, 기차 출발시간이 다가와도 그의 모습을 나타나지 않는다. 기차는 출발할 시간을 알리듯 경적은 울리고, 젊은 레지스탕스가 나타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여인은 혼자 기차에 오른다. 그 모습을 숨어서 애달픈 모습으로 지켜보는 청년 레지스탕스, 그에게는 아직 중요한 임무가 남아있어 함께 떠나지 못했다. 멀리서 그의 운명을 암시하듯 애달프게 울리는 기차 경적소리만 구슬프다. 그의 운명은 언제 돌아올지, 혹은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을 떠났는지 기약이 없다. 그저 기차 플랫폼에서 그를 기다리는 그녀의 애달픔과 몰래 지켜보는 청년의 안타까움만 있을 뿐. 구슬프게도 아름다운 이 곡과 사연을 독자께 소개하려고 했다. 본디 ’플랫폼‘이라는 장소는 기쁨보다는 슬픔이 그려진다. 드라마<모래시계>에도 정동진에서 이별을 암시, 고(故)김 영애 배우의 머플러가 철길로 날아가는 장면이 있다. 잘 써내러 가다 갑자기 ’플랫폼‘의 4 차원적 설명으로 빠져버렸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다시 이 음악을 소개하고 싶다. 이 곡은 ’포항 고전기타 합주단‘에서 처음 기타 연주로 알게 되었다. 함께 연습을 하던 한 단원이 독주로 연주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당시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포항고전 기타합주단>은 클래식 기타연주를 통해 지역문화 발전을 꾀하는 모임이다. 이날도 울릉도 공연을 앞두고 단원들이 모여 서로가 준비한 기타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었다. 그곳에서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아직 기타 연주 실력이 미천한 본인은 연주단에서 대신 사회를 맡기로 했다.울릉도로 가는 뱃길은 참으로 길고 지루하였지만, 도착이 가까워질수록 울릉도의 자연과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깜짝 놀랐다. 눈이 시리도록 멋진 풍경의 바다와 아름답고 신비한 울릉의 섬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울릉도 문화 사업부의 도움으로 울릉<한마음회관>에서 울릉도민을 위한 연주회를 가졌다. 1박 2일의 일정으로 방문한 울릉은 처음 도착부터 돌아오는 그날까지 잊지 못할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었다. 맑디맑은 대자연이 만들어낸 공기는 너무 깨끗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울려 퍼지는 그 음악과 연주는 한마디로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그때를 생각하며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 TV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문명 세계에서 사람이 사람을 살육하는 것이 이렇게나 쉽고 잔인할 수 있을까? 21세기 문명들로 가득한 세상을 함께 살면서 지구촌을 이루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는 시대. 전쟁이라는 단어는 이제 사전에서만 존재하는 말인 줄 알았다. 태어나서 전쟁을 치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큰 감사를 느끼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어떤 나라의 지도자의 유, 불리에 따라 이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전쟁임을 배우게 되었다.전장에서는 지나가던 사람들을 재미로 죽이고, 점령 지역의 민간인 학살이 현실로 나타났다. 결코 보고 싶지 않던 충격적인 장면들이 전파를 탔다.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영상들이 각국의 뉴스뿐 아니라 ’플랫폼‘이라 불리는 ’유튜브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이루어지는 전장의 처참하고 비열한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보고 있다. 민간인을 처형하고, 성폭력을 일삼으며 약탈과 고문, 이를 증명이나 하듯 수많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학살 영상이 마치 진열을 하듯 보여 진다.깨끗하고 아름다운 신비의 섬 울릉도의 추억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 듣게 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식. <문명과 야만>, 이들 중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없을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선택>이라는 것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버리는 것이라고.‘ 문명을 선택할지, 야만을 선택할지, 버릴 것이라면 야만을 버렸으면 한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그 구슬픈 곡에 깔려있는 안타까운 사연만큼이나 아픈 전쟁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