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면 이름없는 돌들 오랜 세월을 견디며 깎이고 깎여 둥그렇게 마음을 넓혀 그 산을 지키고 있다. 큰 나무가 작은 나무를 품어주고 큰 바위가 그 골을 지키고 있다. 칭얼칭얼 산새들 보챌 때마다 산은 제 가슴을 열어 품어주고 있다. 저들의 완장은 오지랖 넓은 품이다.” -윤경숙의 시 ‘완장’중에서 주말마다 산을 찾다보니 산에 대한 글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먼저 눈길이 간다. 윤경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공감이 가는 글이어서 글의 첫머리에 옮겨본다. 삼월 첫주는 선배와 경북 울진군 온정면에 있는 백암산에 다녀왔다. 백암산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오전 9시, 선배와 대이동에서 만나 늘 하던대로 김밥을 사서 배낭에 챙겨넣고 7번국도를 따라 차를 달린다. 가는 도중에 영덕읍에서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하고 카페 ‘고호’에 들렀다. 근처 파리바게뜨에 잠시 들러 샌드위치와 빵을 샀다. 커피를 마시며 아침식사을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카페 ‘고호’는 동해안 방면으로 산행을 할 때면 가끔씩 들러 차를 마시는 단골 커피숍이다. 사장은 초벌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1층에는 카페를, 2층에는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1년 가까이 보지 못해서 서로 궁금했던 안부를 나누며 빵과 샌드위치를 나눠먹고 그간 작업해 놓은 도자기 작품들을 감상했다. 주말 오전, 손님도 없고 한가한 시간이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카페 주인장의 잘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길을 나섰다. 울진 백암산 온천지역에 도착, 한화리조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간을 보니 12시 20분이다. 백암산 산행길은 단순하다. 온정리 온천지역에서 출발해 정상을 거쳐 백암폭포 방향으로 내려오는 원점산행을 하거나 정상에서 갔던 길은 되돌아오는 왕복산행이다. 거리는 둘다 비슷한데 약 10㎞, 4시간 30분쯤 걸린다. 산행 들머리는 조금씩 다르지만 조금만 오르면 모두 만나게 된다. 백암산은 정상의 바위가 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꾼들은 백암산을 겨울산행지로 많이 꼽는다. 눈 산행과 함께 겨울 설경을 감상하고 더불어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어낼 수 있어서다. 또하나는 새해 해돋이를 할 수 있어서다. 백암산에 올라 동해에 붉게 솟아오르는 일출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오늘 등산길은 가장 빨리 올랐다가 내려오는 가파른 코스다. 한화리조트 뒤 산불감시초소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산행 시작부터 깊은 산 속에 들어선 느낌이다. 널찍한 길이 오솔길로 바뀌면서 미끈하게 뻗은 적송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경사진 산을 조금 오르니 화강암 표석이 미터단위로 표기되어 세워져 거리를 알려준다.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가 군데군데 있어서 길 잃을 걱정은 없어 보인다. 구불구불 한 경사진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보니 갈림길이 나온다. 백암폭포 가는 왼쪽으로 가지 않고 우측방면으로 오른다.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한 날씨 때문에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10여 분을 더 걸어 올라가니 천냥묘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흰바위갈림길까지는 20여 분이 소요되는데 경사가 많이 심하다. 급경사를 계속 치고 오르니 갈림길(정상 1,2Km, 한화콘도 3.6Km, 온천장 4.1Km)인 주능선에 닿았다. 잠시 쉬면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 한 모금 마시고, 사과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숨을 고른다. 다시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가 주능선에 오르니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다. 경칩을 하루 앞둔 백암산 고지대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능선에 가득 쌓인 눈을 배경으로 개인 인증샷을 남긴다. 꼬불꼬불한 99굽이길을 따라 올라 갈림길(협수곡-99굽이길)에서  건너편을 보니 백암산 정상이다. 1Km정도 걸어서 도착한 정상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넓은 헬기장이다. 사방이 확트인 정상 표지석(오석)에는 백암산 정상 1004m라고 새겨져 있다.   주변 조망을 보니 막힌 데가 없다.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산아래 펼쳐져 있어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진다. 울진, 영덕 등의 동해안 바다와 서쪽으로 영양군 산림지대 북으로 태백산맥의 주능선이 고루고루 시야에 들어온다.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 아름다운 조망을 멀리까지 볼 수 없고, 눈부시게 펼쳐진 동해의 푸른 수평선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20분. 계속되는 오름길을 따라 힘들게 정상까지 왔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정상에서 인생샷을 남기고 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김밥을 꺼내 먹는다. 날씨가 맑았으면 때묻지 않은 자연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을테지만, 찬바람을 맞으며 먹는 점심도 꿀맛이다. 점심을 먹는데 손이 시리다. 기온 차이가 심해서다. 벗었던 옷를 꺼내 입고 자리를 정리한 후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에서 하산 코스는 두 갈래지만 미련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온다. 스틱으로 균형을 잡으며 쉬지않고 한화리조트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1시간 30분 가량 걸렸다. 걷고, 점심 먹고, 잠시 쉬고, 사진 찍고 보낸 시간을 따져보니 모두 4시간 20분정도가 소요되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근처 온천에서 목욕을 느긋하게 즐기고 나서 저녁식사를 하고, 차 한잔을 하고 나오니 하루의 피로가 다풀린 것 같았다.신라 때부터 알려진 백암온천은 수원지는 3곳이고 수온은 32~53℃라고 한다. 1979년 국민 관광지로 지정됨에 따라 종합온천장으로서의 각종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유황과 라듐성분이 많고 나트륨과 불소, 염소, 칼슘 등 몸에 유익한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피부병, 위장병, 당뇨, 관절염, 류머티즘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8,848m이다. 이 산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뉴질랜드 등산가이자 탐험가인 에드먼드 힐러리다. 그도 단번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건 아니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거듭했지만 실패할 때마다 설산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산아 너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계속 자라날 것이다. 내 기술도, 내 힘도, 내 경험도, 장비도 자라날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어이 네 정상에 나는 설 것이다.” 코로나팬데믹 이후 등산객들이 늘어나고 걷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너도나도 걷기운동이야말로 최고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에드먼드 힐러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진했듯이, 누구나 하고자 하는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한다면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 주말 저녁, 7번국도를 달리는 귀가길의 차량은 많지 않았다. 차 속에서 갑자기 몸이 나른하다는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얼마나 빨리 산 정상을 찍고 내려왔느냐가 아닌 끝까지 동행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스스로 빛나는 별은 없다.”는 대사를 떠올리며 호사로 보낸 하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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