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걸을 때는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길은 걷는 맛이 아니라 뒤돌아보는 맛이구나... 해 싸면서.걸으면서 본 길과 뒤돌아서서 보는 길은 많이 달랐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니 같은 길인데도 다른 길이었다. 돌아보면 길은 언제나 새롭고 아름다웠다. 아무리 지난하고 신산(辛酸)한 삶이라 해도 훗날 뒤돌아보면 모두 아름다운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일까. 걸어 올 때는 힘든 것만 느껴지지만 뒤돌아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것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뒤돌아보지 않는 길은 절반만 본 것이다. 뒤돌아보지 않는 인생은 절반만 산 것이다. 나도 지나온 길을 바라다본다. 그리고 살아온 날들을 톺아본다. 만 60년의 세월이 강물처럼 굽이치며 흘러왔다. 문득 ‘나이 50에 지난 49년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는 저 <회남자> 원도훈 편의 구절이 강물을 타고 흘러오는 듯하다. 저 구절대로라면 나는 나이 60에 지난 59년 364일이 잘못되었음을 알겠다. 지나올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지금 보이는 것들이 그때도 보였더라면 조금은 더 너그럽고 지혜롭게 살았을까. 흘러간 강물처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 많은 날들이 가슴에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저 밀밭을 지나는 바람처럼 한줄기 알싸한 회한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그래도 뒤돌아보지 않는 인생이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신산한 인생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소학>에도 ‘사람은 뒤돌아볼 때마다 어른이 된다.’ 하지 않던가. 비록 회한에 찬 시선일지라도 사람은 뒤돌아볼 때마다 깊어지는 것인지 모른다.지나온 인생길이 아무리 고달파도, 쉼터에서 누리는 이 안락함이 아무리 달콤해도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R. 프로스트가 시 <눈 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에서 ‘숲은 사랑스럽지만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있다’고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야 할 먼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스페인의 태양이 정수리를 넘어와 정면에서 온몸을 휘감기 전에 한 발이라도 더 가야 한다. 아침에 출발한 온타나스에서 이제 겨우 10여 킬로미터 남짓 왔을 뿐이다. 우리가 오늘 몸을 뉠 침대가 있는 프로미스타까지는 아직 족히 20킬로미터 이상이 남아있다.모스텔라레스 언덕을 넘어가자 길 아래로 광활한 평원이 나타난다. 파스텔 톤의 식탁보처럼 펼쳐진 대평원이 순례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준다.평원이 끝나는 약간의 오르막 부분쯤에 쉼터가 보인다. 피오호 샘 쉼터다. 예닐곱 명의 순례자들이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다가 우리를 보며 인사를 한다.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으니 길 건너편에 플라스틱 배관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보인다. 마을 주민인 듯한 중늙은이가 ‘물맛이 최고’라며 물을 권한다. 물을 받아 머리에 한 번 끼얹고 물병 가득 샘물을 채웠다. 걸어온 평원을 뒤돌아보니 모스텔라레스 언덕을 내려온 길이 대평원을 휘돌아 여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계를 보니 대평원을 통과하는 데 딱 한 시간이 걸렸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야속한 길이건만 그와는 별개로 제각기 다른 속도로 익어가는 밀밭의 다채로운 빛의 향연에 노독(路毒)이 절로 풀리는 기분이다. 저 아름다운 길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는 것, 혹은 그 고통스럽던 길이 저렇게 아름다웠다는 사실이 많은 생각을 일으킨다.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극단으로 갈라지는 평가. 석가세존은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하셨고, 시인은 ‘아름다웠더라’ 하였으니 나는 ‘아름다운 고해’라는 짜깁기로 (인생)길을 정의해 본다. 다시 배낭을 둘러매자 정화 씨가 자신은 좀 더 쉬었다가 천천히 간다며 먼저 가란다.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정화 씨를 남겨두고 신부님과 둘이 걷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동행이지 발이 성치 않은 나는 한참 뒤떨어져서 겨우겨우 신부님 뒤꽁무니만 따라가는 꼴이었다. 12시가 조금 넘어 길가에 조성된 자작나무 숲을 지나자 세 시간 동안 밀밭을 가로지르는 황량한 신작로만 이어진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가도 가도 밀밭이다. 사막을 걷는 느낌이 이럴까, 마치 짧은 필름을 반복해서 돌려보듯이 똑 같은 모습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8일 전 아예퀴에서 토레스 델 리오까지 28킬로미터 구간을 악전고투할 때와는 또 다른 고난이다. 그날은 길을 잃었다는 불안감과 고립감, 뜨거운 태양, 체력 고갈이 문제였다면 오늘은 황량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가장 큰 문제다. 시간처럼 공간도 인간을 지배하고 압도한다. 시간과 공간 앞에서 인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는.메세타 구간은 연 강수량이 200미리미터 남짓이라고 한다. 중세 프랑스인들이 이 황량한 메세타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후 이슬람 치하에서 벗어난 스페인 남부 기독교도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손꼽히는 곡창지대로 변모했다고 한다. 정착민들이 땔감으로 사용하거나 집을 짓는 데 사용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면서 그 자리에 거대한 밀밭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곧 벗어날 수 있겠지, 곧 끝나겠지 하는 기대와는 달리 밀밭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압도적이다. 마치 밀밭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물집으로 너덜너덜해진 발이 문제가 아니다. 유사 폐쇄공포증이라 할 만한 압박감과 답답함이 문제다. 유일한 해결책은 부지런히 걷는 것뿐이다.
그렇게 한 발 한 발이 쌓이고 쌓여 얼마나 갔을까. 마을 초입에 수양버들이 시원스레 늘어진 보아디야 델 까미노 마을이 나타났다. 신부님에 따르면 이 마을 어딘가에 운하가 있고 그 운하의 작은 배가 프로미스타까지 운항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운하는 눈에 띄지 않는다. 시에스타(스페인 사람들이 오후에 즐기는 낮잠) 중인지 동네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계속)